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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르익은 중견작가들 만추 수놓아

● 박영남 '자기복제'전, 손으로 그린 추상화 서정미 물씬

● 오원배 프레스코 신작전, 프랑스 유학시절 기억 담은 풍경화

● 최정화 '관계항-대화'전, 이우환·장 미셀 등 거장작품 패러디

박영남 ''고흐와 몬드리안의 합작'' /사진제공=금호미술관

오원배의 ''무제'' /사진제공=아트사이드갤러리

무르익은 이맘때 가을을 인생에 빗댄다면 50~60대다. 땀 흘리며 달려온 젊은 시절의 노력이 완숙한 결과로 돌아오는 풍요의 시기이자,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여유로우면서도 냉철해지는 인생의 '황금기'이다. 요즘 화랑가에서는 깊어가는 가을처럼 잘 익은 50~60대 미술가들의 개인전이 눈길을 끈다. 금호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박영남(65)을 비롯해 아트사이드갤러리의 오원배(61), 나무화랑의 정복수(59), 학고재의 정현(58), 갤러리인의 고낙범(54), 박여숙화랑의 최정화(53) 등이 그 주인공이다.

◇박영남의 자기복제=그는 붓이 아닌 손으로 물감을 긋거나 바르는 행위로 서정적인 추상회화를 만들어 낸다. 박영남 국민대 교수는 어린아이의 물감장난 같은 자유로운 손짓 안에 농익은 감성과 치밀한 이성의 균형을 이루며 고유한 미감을 완성했다. 아크릴물감은 바른 지 15분이 지나면 굳기 시작하기 때문에 작가는 물감이 마르는 속도를 조율하면서 여러 겹의 층을 쌓아 간다. 이번 금호미술관 전시명인 '자기 복제'는 "한 작품이 나오면 다음 작품이 진화돼 나온다"는 점에서 따왔다. 1990년 '자기 복제' 연작으로 시작됐던 '블랙 앤 화이트'를 비롯해 채색 작업 100점과, 오스트리아 수도원 공방에 체류하면서 배운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등이 선보였다. 11월 9일까지. (02)720-5114

◇오원배의 엄격한 노역=종교적 그림도 아닌데 작품에서 신성함이 감지된다. 통의동 아트사이드갤러리를 채운 오원배 동국대 교수의 프레스코(fresco·벽화의 일종) 신작들이다. 실존적 문제에 대한 고민을 어두운 색조의 인물화로 보여왔던 작가의 기존 대표작과 비교하면 밝아진 색채의 풍경화가 '의외'다. 하지만 정통 프레스코화가 석회가 마르기 전 그림을 완성해야 하는 긴박함과 보통 20시간은 밥 먹으러 자리도 뜨지 못한 채 작품을 지켜야 하는 엄격한 노역의 결과로 제작된다는 사실을 알고 본다면, 거친 듯한 화면을 덮은 미묘한 색감에서 숭고함까지도 느낄 수 있다. 르네상스 화가들의 이 기법을 30년 전 프랑스 유학시절에 익힌 작가는 "전통의 양식 속에서도 현대의 문맥을 찾아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파리 유학시절 창문 아래로 보이던 다양한 지붕과 굴뚝이 풍경화의 소재가 됐다. 11월 19일까지. (02)725-1020



◇최정화의 제대로 예술=프랑스 샴페인 '돔 페리뇽' 병 40개와 소주병 130개의 파편을 눈덩이처럼 뭉쳐 묵은 통나무 판 위에 올려놓았다. 제목은 '관계항-대화'. 돌과 철판을 소재로 한 이우환의 작품 '관계항'에 대한 최정화 특유의 기발한 패러디다. 그 색유리 뭉치를 알사탕부터 주먹 만한 크기로 빚어 엮은 '목걸이' 형태 작품은 프랑스 거장 장-미셀 오토니엘을 떠올리게 한다. 다른 작가에 대한 경의의 표현인 오마주(hommage)는 자신의 작품관이 확립된 후 주변을 돌아볼 여유와 자신감이 생겼을 때라야 가능한 작업. 홍익대 회화과 출신의 정통 미술가임에도 패션·건축·영화 등을 아우르며 전방위 작가로 외도해 온 작가는 "이제 '선데이 아티스트'(취미화가)에서 '에브리데이 아티스트'(전업작가)로 살 것"이라며 "플라스틱·소쿠리 외에도 유리·나무·돌 등 모든 재료를 사용해 민속과 무속, 바로크와 현대미술의 융복합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한다. 박여숙화랑12월 12일까지. (02)549-7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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