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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뒤에는 우리 시장을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국내 휴대폰 제조업체 A사 임원) 애플과 구글이 주도하고 있는 글로벌 정보기술(IT) 업계의 대격변 속에서 국내 업체들이 중국이라는 복병을 만났다. 국내 휴대폰 제조업체들보다 뒤떨어진 기술력과 모조품, 이른바 '짝퉁'밖에 만들지 못한다며 한 수 아래로 치부하던 중국 업체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ZTE나 화웨이 등 중국 업체들은 1,000위안(150달러) 미만 저가폰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자동차ㆍ백색가전 등 다른 분야에서 그랬듯이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우리 시장을 잡아먹을 강력한 경쟁자로 성장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ZTEㆍ화웨이는 어떤 업체인가=ZTEㆍ화웨이는 아직 국내 시장에 잘 알려지지 않은 업체들이다. 아직 국내 시장에 진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삼성그룹 수요 사장단 회의에서 홍원표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부사장이 스마트폰 시장의 경쟁구도가 바뀌고 있다며 ZTE를 거론했을 때 일반인들에게 알려지지 시작했을 정도로 국내에서는 존재감이 미약하다. 하지만 ZTE와 화웨이는 이미 글로벌 휴대폰 시장에서는 강자로 대접받고 있다. 지난 2ㆍ4분기 시장 점유율(MS)이 각각 5.5%, 3.9%로 노키아ㆍ삼성ㆍLGㆍ애플에 이어 당당하게 5위, 6위를 차지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원조로 불리는 '블랙베리'를 생산하는 리서치인모션(RIM), 대만의 HTC, 모토로라를 1.5~2%포인트가량 앞서고 있다. ZTE의 올해 상반기 매출은 373억위안으로 전년 동기 대비 21.5% 성장했다. 특히 해외 매출은 같은 기간 36.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글로벌 휴대폰 시장의 격전지로 불리는 유럽ㆍ북미 매출 증가 속도가 빠르다. 화웨이의 올해 상반기 매출은 938억위안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 증가했다. 화웨이는 이 기간 전세계적으로 7,200만대의 단말기를 판매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 증가한 수치다. 특히 화웨이는 최근 휴대폰에 이어 태블릿PC시장으로 보폭을 넓혀가고 있어 주목된다. 안드로이드OS 3.2버전을 탑재한 7인치 태블릿PC를 곧 출시할 예정이다. ◇저가폰에서 프리미엄 스마트폰으로 전선 확장될 듯=국내 휴대폰 전문가들은 한국과 중국의 휴대폰 제조기술 격차가 불과 6개월에서 1년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업체들의 가격인하 드라이브를 통한 무서운 성장세로 볼 때 국내 업체들을 추격할 날도 머지않았다는 분석이다. 한 휴대폰 제조업체 임원은 "ZTE나 화웨이는 장비업체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의 저가 휴대폰 시장의 강자로 떠올랐다"며 "장비제조 역시 10년 전에는 미미한 존재였지만 지금은 이들 업체의 장비를 쓰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비 제조업계에서 저가 경쟁력을 무기로 시장을 잠식했듯이 휴대폰 시장 역시 중장기적으로 충분히 위협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이어 "국내에서 신제품을 내놓으면 이르면 6개월 내에 비슷한 제품을 내놓는 수준까지 기술력이 올라왔다"며 "5년 뒤에는 우리 시장도 빼앗길 수 있을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삼성ㆍLG전가가 고가 프리미엄 스마트폰, 중국 업체들이 저가폰에 집중하고 있는 등 시장이 다르지만 어느 접점에서는 결국 경쟁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종완 삼성증권 책임 연구원은 "ZTEㆍ휴웨이는 중국뿐만 아니라 인도 등 신흥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다"며 "향후 스마트폰이 더 대중화되고 가격 하락세가 지속되면 어느 접점에서는 우리 업체들과 경쟁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럴 경우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과 함께 확실한 양강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달리 중간에 끼여 있는 LG전자의 입지가 더 좁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가격 경쟁력과 풍부한 내수시장이 강점=중국 휴대폰 제조업체들의 성장 배경은 가격 경쟁력과 함께 풍부한 내수시장이 배경이다. 중국 공신부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기준 중국 전체 이동통신 가입자 수는 9억3,000만명에 이른다. 국내 이동통신 가입자 5,175만명의 18배에 이르는 규모다. 든든한 내수시장을 배경으로 올해 2ㆍ4분기 중국 내 스마트폰 판매량은 1,681만대(짝퉁ㆍ밀수폰 제외), 전년 동기 대비 7.5% 성장했다. 중국 업체들의 성장세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조사업체 IHS아이서플라이 조사 결과 올해 중국 제조사들의 스마트폰 출하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3% 늘어난 5,410만대로 이 중 화웨이와 ZTE가 각각 1,500만, 1,000만대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휴대전화 제조사 전체 출하량은 지난해 2억2,800만대에서 올해는 11.8% 늘어난 2억5,500만대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승혁 한국투자증권 책임연구원은 "중국 업체들의 저가 경쟁력이 워낙 탁월하다"며 "아직은 경쟁 분야가 다르지만 저가폰 시장에서처럼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가격으로 치고 나온다면 다른 업체들은 마진을 맞추지 못하니까 결국 손을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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