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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의 책임 소재와 남측 당국자의 현장조사 허용 문제들을 둘러싸고 남북이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면서 남북 관계가 장기간 경색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번 피살 사건이 어떤 이유에서건 정당화될 수 없다며 북측에 명확한 해명과 진상조사를 요구하고 있지만 북측은 이를 사실상 거부하면서 오히려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 사설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의 남북 간 대화제의에 대해 논할 가치도 없는 것이라며 대남 비방 수위를 높이고 있어 남북 간 대립의 골은 더욱 커지고 있는 모습이다. ◇커지는 의혹들=정부와 한나라당은 13일 금강산 관광객 총격 피살 사건과 관련, 철저한 진상규명을 다짐하며 진상조사단 수용을 북측에 거듭 요구했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 한승수 국무총리, 정정길 대통령실장을 비롯한 당ㆍ정ㆍ청 지도부는 이날 오전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긴급 간담회를 갖고 철저한 규명을 요구하기로 의견을 모았고 당정은 이와 별도로 이날 오전 국회에서 통일부, 현대아산 관계자들이 함께 참석한 가운데 협의를 갖고 향후 대응책을 논의했다. 특히 사망한 박왕자씨가 20분 만에 3㎞가 넘는 백사장을 치마를 입고 이동했다는 점이 논리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정부는 북측에 명확한 진상규명 협조를 촉구하고 나섰다. 특히 사건 목격자의 진술 중 총격 횟수 등이 북측 설명과 어긋나는 등 북측 설명에 대한 신빙성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김호년 통일부 대변인은 “이번 사건에 대해 북측이 현대아산 측에 설명하고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 대변인 담화를 통해 밝힌 내용 자체만으로 볼 때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면서 현지 지도까지 동원해가며 의문점을 제기했다. 정부는 지난 12일부터 현장 목격자를 포함해 박씨와 함께 금강산으로 떠났던 일행들의 진술을 청취하기 시작하는 등 진상규명에 본격 나서고 있으며 14~15일께 박씨의 부검결과가 나오는 대로 북측 초병이 얼마나 떨어진 거리에서 발포했는지 등도 따져볼 계획이다. 하지만 북측이 사고 책임은 전적으로 남측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현장조사를 거부하고 있어 의혹해결의 실마리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더구나 북한 체제의 경직성을 감안할 때 북한이 조사 불가라는 입장을 내놓은 후 이를 뒤집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점에서 정부 당국자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남북 관계 냉각 분위기 지속 우려감 커져=정부는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이후 금강산 관광을 잠정적으로 중단시키기는 했지만 개성공단 관광은 그대로 유지하는 등 이번 사태의 파장이 확산되는 것을 경계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관광객 피격 사망에 대한 국민적 정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고 있고 정치권에서도 정부의 강력한 대응을 요구하는 등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어 남북 관계 경색 국면은 사실은 장기화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3일 이명박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한 남북 관련 제안에 대해 “지금까지 아래 것들이 떠들어오던 것을 되풀이한 것으로 논할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라고 오히려 대남 비방 수준을 높이고 있다. 북한은 이미 초기부터 강경 대응 기조를 밝힌 상황인데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면서 남북 관계에서 더 잃을 것이 없다는 입장이어서 사실상 대치 국면 지속 전술로 나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 때문에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금강산 관광 중단이 장기화되거나 개성 관광마저도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결국 새 정부 들어 남북 관계의 지지대 역할을 하던 민간 교류에서 타격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고 이는 남북 당국자 간 대화나 남북 관계 전반에 악영향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더구나 북한의 공식 입장이나 다름없는 노동신문 사설을 통해 이명박 정부의 대북 대화 제안을 거절하면서 남북 당국 간 대화 재개를 위한 우리 정부의 행보도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이산가족 문제와 개성공단 확대는 물론 당장 6자회담 대북 경제 지원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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