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앞서의 칼럼을 통해 우리 노사관계의 새 지평을 열기 위한 비전의 설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필요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정작 그 내용에 대해서는 의견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노사 이해중립의 객관적 입장에서 지속 가능한 사회경제발전을 위해 실현 가능한 비전이 설정돼야 한다는 데에는 별다른 이의가 없을 것으로 믿는다. 이러한 비전 설정에서 견지돼야 할 기본 입장은 상생협력의 노사관계이다. 이는 전근대적 온정주의나 도식적 계급주의의 양 극단을 배제하고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민주주의를 확충해나가자는 것이다. 이에 입각해 분배의 연대만이 아니라 생산의 연대도 동시에 추구하며 선별적-보편적 복지와는 차원이 다른 생산적 복지를 중심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노사관계는 신분관계가 아닌 계약관계이며, 사회구조적 요인만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노사 모두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상생의 관계에 있다는 기본인식을 다지는 것이다. 이는 노사 모두가 각자의 이익과 권리만이 아니라 사회적 의무와 책임에 대해 충실할 것을 요구하는데 '의무가 권리를 낳고 권리는 책임을 낳는다'는 인식을 확고히 해야 한다. 법과 원칙의 준수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기업의 '책임'은 필수이고 '공헌'은 선택이며 이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근로기준을 준수하고 경제사범에 대해서는 엄정한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노조는 이미 사회적 약자가 아닌 강자로 부각돼 있는 바, 조합원을 포함한 근로자에 대한 서비스가 기본 책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더불어 노조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도 필요하다. 정부는 무엇보다도 부정부패를 근절하고 서비스 행정으로 이를 선도해나가야 할 것이다. 기업은 노무관리는 물론 인적자원에 대한 인식수준을 보다 제고해 이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고 정부는 이에 대해서도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노조는 이제 투쟁에서 서비스로 그 중심을 이동해 이에 따른 조직개편과 더불어 분권화를 단행할 필요가 있다.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노사협의를 통해 초기에는 점진적 동의 방식을 활용하여 수용하되 일단 수용되면 합심해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체제를 갖출 것이 요망된다. 상호 '버티기'와 '떠넘기기'는 지금까지의 경험이 말해주듯 변화에 대한 가장 어리석은 대응방식이다. 노사관계 비전의 설정을 위해 다뤄야 할 가장 핵심적인 과제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사회 양극화의 완화일 것이다. 잘 알다시피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사회 양극화와 맞물려 있고 이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노사협력이 절실하고 이는 다시 노사관계 개혁의 과제와 맞닿아 있다. 대기업과 공공 부문에서 노조의 현장권력은 조정돼야 할 것이며, 비정규직의 남용 방지와 더불어 차별 시정을 실효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사회안전망을 지속적으로 확충하되 활동화(activation)를 중심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노동시장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으로 이행노동시장에서 필요한 고용 서비스나 직업훈련과 같은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에 정책의 중점을 둬야 할 것이다. 정리해고를 수용하되 전직(outplacement) 조치를 의무화하고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정부가 지원하는 방안도 고려해봄 직하다. 이 핵심적 과제만이 아니라 이슈 전반에 걸쳐 노사정의 사회적 대화는 당연히 활성화돼야겠지만 이제 이러한 대화는 명분이 아닌 실제여야 한다. 상호 입장의 청취 및 이해를 통하여 공통 분모를 확대해나가야 할 것인데 이는 현재의 중앙집권적 대화 체제를 분권체제로 과감하게 전환해야만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지역ㆍ업종 등으로 대화 채널을 다양화하고 분권화함으로써 명분에 집착하기보다는 작으나마 대화의 결실들이 맺힐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모든 사안을 펼쳐놓고 중앙에서 일괄타결을 통해 사회협약을 체결하는 것은 이제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비전의 설정은 열이 아닌 빛을 추구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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