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데스크 칼럼] '시대정신' 을 따르려면

법무부 장관의 고유권한 행사냐, 검찰의 독립성 훼손이냐는 첨예한 논란을 불러일으킨 이번 ‘수사지휘권 행사’를 통해 국민들은 참여정부가 요구하는 것들에 대해 적어도 한가지는 분명하게 건졌다.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은 지난주 말 김종빈 검찰총장 사표 수리방침을 밝히면서 “검찰도 검찰권 운용의 기준에 대한 ‘시대정신’에 따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의미·실체·기준등 아리송 그가 언급한 ‘시대정신’은 현재로서는 이런 것이겠거니 하는 짐작만 갈 뿐 아리송하다. 특히 문 수석이 검찰에 요구한 시대정신이라는 것이 노무현 대통령의 의지와도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최근 사회 곳곳에서 불거지고 있는 각종 파열음의 근저에 바로 이 ‘시대정신’이 깔려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시대정신을 파악하기 위해 상식이나 관행, 법리 등등이 심각하게 충돌하고 있는 지금의 이 어지러운 정황들을 다시 한번 정리해보자. 법무부 장관이 발동한 수사지휘권은 현행 법에서 인정하고 있다. 이 권한을 행사했다고 잘못했다는 질타를 한다면 법규를 만들지 말았어야 한다. 여기까지가 평면적인, 또는 법률에 근거한 현실이다. 하지만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가 헌정 사상 처음이었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토머스 모어는 공상소설 ‘유토피아(1516년 간행)’를 통해 지금과 유사한 상황을 놓고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사실상 사문화돼 있는 법률을 어느 날 갑자기 현실에 적용시키기 시작한다면 사람들은 위정자의 의도를 의심한다.”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은 과거 60년 동안 단 한 번도 행사되지 않았다. 권한을 행사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행사하지 않을 때보다 행사할 때 훨씬 사회 전체에 미치는 악영향 또는 역기능이 클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은 아닐까. 각도를 달리하면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이라는 것은 이미 해당 분야 및 담당자들에게선 ‘법률로서의 기능’보다 ‘상징적인 의미’로 자리잡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일부에서는 이 때문에 이번 파문을 놓고 “신화가 현실로 들어오려고 하는 시대착오”라고 폄훼하고 있다. 법리 논쟁이야 전문가들의 영역이라고 치부한다지만 적어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 법무부 장관이 60년 만에 처음으로 수사지휘권을 행사한 의도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참여정부가 말하는 시대정신의 기준은 더더욱 아리송하다. 시대정신과 연결시켜 생각해볼 또 다른 사안이 ‘삼성 때리기’로 명명된 대재벌 정책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중앙언론사 경제부장 초청 간담회를 통해 “삼성에 문제가 있다. 삼성이 사회적으로 공론화한 규범을 수용해야 한다”고 직접 언급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삼성애버랜드 CB 헐값 발행 등에 대해 “합법적이었다고 할지라도 세금이 적은 것은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며 “포괄적으로 대안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요구했다. 기업들 '정서법' 에 맞춰야 하나 삼성은 대통령의 이 같은 요구를 놓고 벌써 보름이 넘게 고민에 고민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뾰족하게 해법을 찾기가 쉬워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수사지휘권 행사’ 파문에서 드러난 ‘시대정신’이 바로 삼성 고민의 실체는 아닌가 싶다. 골목골목의 선술집에서는 떼법 또는 정서법이라고 표현되는 바로 이 시대정신에 삼성을 포함한 기업들이 알아서 맞추라는 것이 대통령의 요구라면 너무 심한 표현인가. 어찌됐건 적어도 이 시대 권부에 밉보여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면 현재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추상적이며 상황에 따라 오락가락하고 실체도 모호한 ‘시대 정신’을 눈치껏 따라다녀야 할 것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