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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앞에 앉으면 아직도 신이나, 화전민 학자는 되레 칭찬"

'녹색고전'으로 100권째 단행본 출간한 김욱동 교수


“근대 학문의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에서 학자의 본분이자 사명감에서 비롯된 글쓰기였습니다. 서양에서 공부한 시각으로 우리문화에 대한 견해를 넓혀나가 더 넓은 학문의 영역을 확대할 수 있었지요.”

30여년간 영문학자이자 문학비평가로 연구해 온 김욱동(65ㆍ사진) 서강대 명예교수가 100권째 단행본 ‘녹색고전(김영사 펴냄)’을 출간했다. 1988년 첫 책‘대화적 상상력:바흐친의 문학(문학과지성사 펴냄)’이 출간된 지 25년 만이다.

전공관련 논문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경향이 짙은 학계에서 매년 2권 이상의 단행본을 출간하는 교수는 흔치 않은 게 현실이다. 100권의 단행본이 출간되기까지의 과정을 듣기 위해 최근 그를 만났다.

김 교수는 “1982년 서강대에 첫 부임을 한 후 강의 등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여러가지 공부를 하면서 7년여를 투자해 책 쓸 준비를 했다”며 “1998년 안식년을 맞아 하버드대 연구교수로 1년간을 지내면서 첫 책을 출간하게 됐다. 이후부터는 책을 쓰는 데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며 100권 출간의 과정을 설명했다.

뉴욕주립대에서 윌리엄 포크너 관련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국내로 돌아와 영문학 외에도 국문학, 환경학, 수사학, 민속학, 문학비평 등 다양한 분야로 연구의 영역을 확대 해 나갔다. 다방면에 대한 연구로 한국의 인문학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그의 저서 중에는 ‘우리가 꼭 알아야 할 한국 고전(현암사 펴냄)’등이 포함된 것도 학문의 외연을 꾸준하게 넓혀나간 그의 연구과정에서 비롯된 성과물이다. 그는 “양주동(와세다대 영문과), 김진섭(호세이대 독문학), 이하윤(호세이대 법문학부) 등 근대 우리 인문학의 주축을 이뤘던 학자들은 대부분 유학파였다”며 “외국의 학문 연구 방법을 우리 인문학에 적응하고 우리의 문화현상을 폭넓게 볼 수 있는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영문학자의 이 같은 학문적 외도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다. 한 우물을 파는 ‘정착민 학자’가 대부분인 당시 학계에선 그를 ‘화전민 학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김 교수는 “한곳에 천착하지 않고 여러 곳에 불만 지르고 다닌다는 의미로 화전민학자라고 했지만 비아냥이 아니라 되레 칭찬이라고 받아들였다”며 “외국 문학을 배우고 그에 천착하기 위해 유학을 다녀온 게 아니라 우리의 인문학의 깊이를 더하기 위한 통섭의 과정에 불과하다”며 “번역, 문학비평, 한국고전, 환경생태학, 수사학 등을 공부한 덕분에 융합과 복합적인 견해를 얻을 수 있게 됐다. 연구방법론적인 차원에서 보면 정착민과 화전민은 단지 선택에 불과할 뿐이다. 들뢰즈는 화전민 대신 ‘유목민 학자’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다만 유목민 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전공 분야에 대해 깊이있게 연구를 한 다음 인접 학문 분야로 원심적으로 확산해 가는 연구방법이 바람직하다”며 후배 연구자들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지난 25년동안 꾸준하게 연구하고 번역해 온 그는 ‘인문학의 시대’, ‘통섭의 시대’로 불리는 최근 날개를 달았다. 기업인을 위한 인문학 강좌는 물론 일반 시민들을 위한 고전 인문학 강좌에서도 스타강사로 인기가 높다. 서울시교육청과 본지 부설 백상경제연구원이 공동으로 주최하고 있는 고전인문아카데미 ‘고인돌(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에도 헤밍웨이를 주제로 강의를 맡았다. 김 교수는 “시민강좌는 대중과 교감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며 “내 책을 읽은 독자들의 생각과 반응을 직접 확인할 수 있어 연구자에게는 중요한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이번에 출간된 책도 그동안 그의 유목적 연구 업적이 녹아 들어있다. ‘녹색고전’은 환경생태학과 고전문학을 접목하여 박지원의 ‘호질’‘삼국유사’등 한국 고전에서 환경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전한다. 책은 경제중심, 물질중심, 인간중심의 지구호의 생태 훼손의 심각함을 극복하는 해법을 고전에서 찾을 수 있도록 독자들을 안내한다.

100권으로 그의 집필과정은 끝이 아닐 듯 싶다. 그는 디지털 시대의 인문학을 주제로 한 책을 내기 위한 원고도 작성하고 있다. 김 교수는 “아날로그 형식의 책은 지식이자 지혜이지만 디지털 지식은 정보에 불과하다. 디지털매체를 통한 정보는 덮는 순간 날아가버리는 휘발성이 강해 쉽게 사라져버린다”며 “활자매체를 통한 지식의 축적이 우리 삶에 어떻게 지혜로 축적이 되는지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현재 출판사를 찾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컴퓨터 앞에 앉으면 신이 난다”는 김 교수는 이어“힘이 닿는 대로 그동안 연구한 성과를 써 내려갈 작정”이라며 활짝 웃었다. /장선화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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