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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레이건과 오바마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취임식이 열린 미국 워싱턴DC. 가장 인기 있는 기념품 중 하나는 오바마 대통령의 얼굴을 러시모어산에 가상으로 새겨 넣은 포스터였다. 거리 곳곳에서 지지자들은 이 포스터를 흔들며 '오바마'를 연호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친숙한 러시모어산은 미 중서부 사우스다코타주에 위치한 바위산이다.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을 비롯해 토머스 제퍼슨(3대), 에이브러햄 링컨(1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26대) 등 미국의 정신을 상징하는 4명의 대통령 얼굴이 새겨져 있는데 묘하게도 얼굴 하나가 추가로 들어갈 만한 공간에 남아 있다.

그 자리에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물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이다. 미국 내에서는 각각의 전담조직까지 결성돼 치열한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특히 보수세력은 루스벨트 얼굴을 아예 지우고 그 자리에 레이건 얼굴을 새겨 넣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러시모어 조각상 둘러싸고 양분된 미국

해외에서는 장난기 섞인 논쟁쯤으로 보이는 주제를 가지고 왜 미국 사회는 둘로 쪼개져 맞붙고 있는 걸까. 바로 미국의 미래를 둘러싼 노선 갈등을 밑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루스벨트 혹은 오바마가 진보 세력을 대변한다면 레이건은 보수의 아이콘이다.

루스벨트는 지난 1932년 집권 이후 '사회주의적인 조치'라는 일각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부유층 증세, 사회보장 확충, 시장규제, 정부 주도의 뉴딜정책을 밀어붙였다. 후폭풍도 강력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34대), 리처드 닉슨(37대) 등 공화당 출신 대통령들조차 루스벨트 정책의 골간을 흔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 같은 흐름을 50년 만에 근본적으로 바꿔놓은 인물이 바로 1981년에 집권한 레이건이다. 그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맞은 취임식에서 "정부는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며 정부가 바로 문제 그 자체"라고 일갈했다. 이후 '작은 정부-큰 시장'을 담은 레이거노믹스를 앞세워 대규모 감세, 과도한 규제철폐, 사회보장비 축소 등을 단행하는 한편 노조의 불법파업에는 강공책으로 맞섰다.

비록 폴 크루그먼 예일대 교수 등 진보학자들은 "결코 레이건의 공이 아니다"라며 비판하지만 어쨌거나 퇴임 직전의 경제 성적표는 우수했다. 또 외교ㆍ군사적인 힘을 바탕으로 소련을 해체시키고 냉전시대를 끝내는 성과도 이뤘다.



하지만 미국 사회는 30년 만에 또 한번 패러다임의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소수만 잘 살고 다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미국이라는 나라는 성공하지 못한다"라는 오바마의 재선 취임연설은 "미국 정부는 독점자본과 투기세력의 조력자가 아니다. 나는 그들과 싸울 준비가 돼 있다"라는 1936년 루스벨트의 대선 유세연설을 연상케 한다.

이제 오바마는 1기 행정부 때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느라 바빠 다소 감춰뒀던 '큰 정부-작은 시장'기조를 노골적으로 드러낼 기세다. 그는 부자증세, 건강보험 개혁, 이민자 보호, 대외 관계에서의 대화추구 등 핵심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2기 행정부에 코드에 맞는 인사들을 전면 배치했다. 포브스(1월21일자)는 이를 두고 "오바마, 레이건 시대에 안녕이라고 말하다"라고 평가했다.

이 같은 미국 사회의 움직임을 결코 한국에 단순 투영할 수는 없다. 한국은 근대화 과정에서 국가 주도로 발전해왔고 여전히 정부가 시장의 우위에 서 있다. 건강보험 도입이나 동성애 허용, 총기 규제강화 등을 둘러싼 미국 내 논쟁은 우리에 먼 나라 얘기로만 들린다.

'정부 대 시장' 논쟁 한국에도 영향

다만 분명한 점은 워싱턴포스트(WP) 칼럼니스트인 찰스 크로스해머의 지적대로 오바마의 재선으로 미국 사회가 중요한 '이념의 변곡점(ideological inflection point)'에 서 있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적 가치를 중심으로 성장 모델을 만들어온 한국의 정치ㆍ정치계나 학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사회가 1860~1861년 남북전쟁 이후 최악의 국론분열상을 극복하고 어떤 합의점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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