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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7월 3일] <1739> 네세시티 요새 전투


버지니아 민병대 300명을 포함한 영국군 400명이 프랑스ㆍ인디언 연합군 600명과의 격돌에서 참패했다. 프랑스 쪽이 3명 전사, 19명 부상이라는 피해를 입는 동안 31명 전사에 70명이 부상 당하자 버지니아 민병대의 청년장교는 백기를 들었다. 1754년 7월3일, 오하이오 협곡 부군에서 벌어진 네세시티 요새 전투의 개요다. 프랑스군 지휘관은 아량을 베풀었다. 버지니아 민병대의 22세 된 중령이 2개월 전 사절단으로 영국군 진지로 향하던 자신의 친형을 죽인 원수였음에도 '향후 1년간 전선에 복귀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달아 포로 369명과 함께 풀어줬다. 버지니아 식민지에서만 1만파운드의 채권을 발행해 민병대를 편성, 영토싸움을 벌이려던 영국은 본격적인 반격에 나서면서 북미대륙에서 '프렌치ㆍ인디언 전쟁'이 일어났다. 그뿐 아니라 오스트리아의 왕위계승 문제와 얽히면서 유럽은 물론 인도에서도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을 벌였다. 소규모 전투가 최초의 세계대전, 전사자만 90만~140만명으로 추정되는 '7년 전쟁'의 단초를 제공한 셈이다. 7년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은 프랑스의 북미 식민지 대부분을 양도받고 인도 지배권을 보장받았으나 막대한 전쟁비용으로 재정이 크게 나빠졌다. 프랑스와의 전쟁에 비협조적이었던 북미 식민지들에 대한 징벌과 재정수입 확대를 위해 각종 증세조치를 추진한 끝에 식민지의 반발을 사고 결국 미국을 잃었다. 패전과 미국 독립전쟁 지원으로 재정이 고갈된 프랑스는 대혁명을 겪었다. 배다른 형의 죽음으로 장교직을 물려 받아 네세시티 전투에서 패배한 민병대의 청년 장교는 돈 많은 과부와 결혼해 식민지 최대 부호 가운데 한 사람으로 떠오르고 독립전쟁에서는 총사령관을 맡았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까지 오른 조지 워싱턴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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