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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이헌재-대한민국의 단면

권홍우 정치부장 hongw@sed.co.kr

이헌재가 아깝다. 그만한 경제관료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불명예스럽게 퇴진하기에는 업적이 많은 관료다. 외환위기의 한복판에서 초대 금융감독위원장을 맡아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고 참여정부 출범이래 하강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한 경제를 떠맡으며 쌓아온 경륜도 국가적 재산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구원투수로 투입된 이헌재의 진가는 해외에서 더 알아준다. 외국인들의 주식 실망 매물이 나오는 것도 그 반증의 하나다. 경기회복 조짐이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게 전적으로 그의 공은 아니지만 이헌재 경제팀이 어려운 시기를 헤쳐왔다는 점은 사실이다. 이헌재를 처음 만났던 15년 전이 떠오른다. 이헌재 당시 한국신용평가 사장의 자신에 찬 눈매가 아직도 기억난다. 지난해 초가을, 열린우리당 386의원과 불화설로 퇴진한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 한밤중에 한남동 자택을 찾아간 기자에게 “나갈 때 나가겠지만 경제가 어려운 지금은 때가 아니다”고 했던 말도 귓가를 맴돈다. 경제가 이제 나아지는 듯한데…. 더욱 아쉽다. 아쉬움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그것은 한국의 현주소다. 이헌재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정말로 부동산 투기를 했는지, 아니면 퇴임사에서 밝힌 대로 어떤 불법이나 편법, 이면거래가 없었는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분명한 점은 특출한 관료로 이름난 그도 ‘한국적 스캔들’의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잘나가는 정치인이나 고위관료가 ‘의혹’으로 물러나는 과정은 한결같다. 아주 조그맣게 시작해 의혹이 갈수록 증폭돼 결국은 무너지고 만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이 전 부총리가 투기나 할 사람이 아니라고 믿는다. 본래 재산도 적지않다고 전해진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 한국사회 전체의 문제다. 강직하다고 여겨지는 그마저 ‘한국의 지도층이 부를 증대시키는 방식-부동산’을 택했다는 게 눈을 크게 뜨고 봐야 할 대목이다. 국민이 국가지도층을 불신하고 사회적 통합이 힘든 이유도 비슷한 곳에 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지위가 높아진 후 재산형성 과정은 한결같다. 불법과 편법, 비리가 개입한다. 맑아졌다고 하지만 체감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청탁(淸濁)과 빈부(貧富) 여부를 떠나 유명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들의 대부분은 부도덕한 방식으로 재산을 모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있는 한 국민통합은 기대하기 어렵다.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도 요원하다. 현재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미래다. 우선 걱정이 앞선다. 외국인들이 주식을 팔고 있다. 해외에서 거래되는 한국채권의 값이 떨어질 수도 있다. 당장 타격이 있더라도 새로운 희망을 찾을 수 있다면 이 전 부총리의 사임은 오히려 잘된 일이다. 어떻게 새로운 희망을 찾을 것인가. ‘마녀사냥식 여론몰이’가 통하는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겠냐는 반문이 가능하다. 희망은 답이 바로 마녀사냥이다. 국민들은 기회만 닿으면 마녀사냥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권력자는 모두가 도둑놈’이라고 생각하는 탓이다. 여태껏 늘 그래왔으니까. 가진 자들이 의무를 다한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다면 마녀사냥의 근원이 없어진다. 오해를 살 만한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가 발붙이지 못하는 풍토가 조성된다면 국민통합도, 경제회생도, 국민소득 2만달러도 어려운 목표가 아니다. 걸출한 인물을 좋지 않은 모양새로 보내는 아픔을 다시 겪지 않는 길은 사회 전체가 업그레이드되는 것이다. 깨끗하지 못한 사람이 누군지 가려내는 일은 국민의 몫이다. 재산형성 과정이나 병역 비리, 이권청탁과 관계없는 사람을 골라내고 검증하는 데 보다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속죄양으로 삼기에는 아깝지만 이헌재 전 부총리가 사회통합을 위한 디딤돌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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