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반도체 매각이 당초 오는 9월에서 10월 이후로 연기된 것은 유재한 전 정책금융공사 사장의 전격적 경질에 따른 후폭풍을 최소화하고 딜을 정상화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채권단 내 형성됐기 때문이다. "서두르다가는 또 꼬인다"는 채권단 관계자의 말이 이를 대변한다. 하지만 채권단은 향후 "신주 매각 범위를 15%까지 확대할 수 있게 됐다"며 과거 구주에서 신주 중심으로 매각 중심축을 옮겨가고 있다. 다만 반도체값 폭락으로 하이닉스 주가가 반 토막 나고 모피아 출신인 유 사장의 경질로 금융 당국이 하이닉스 매각 전반을 재점검하기로 해 하이닉스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정책금융공사는 하이닉스 채권단협의회의 2대주주이자 공기업으로 정부의 창구이기도 하다. 또 채권단 공동관리 지분을 제외하고도 2.88%의 하이닉스 지분을 갖고 있는 대주주다. 채권단 관계자는 "유 사장의 사퇴로 정책금융공사의 하이닉스 매각 방침이 바뀔 가능성이 크지만 2대주주를 빼고 매각기준을 결정하는 것은 또 다른 혼선을 만드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책금융공사가 새 사장 취임 후 내부 방침을 새로 정하면 그 후 매각기준 등을 협의해 결정할 수밖에 없어 입찰을 연기했다"고 말했다. 채권단이 입찰을 연기하며 매각기준을 신중히 정하기로 한 데는 유 전 사장의 존재감도 고려됐다. 하이닉스 매각을 채권단과 충분한 협의 없이 먼저 발표해 혼선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경질됐지만 유 전 사장은 올 초 현대건설 매각을 뚝심 있게 밀어붙일 만큼 현 정부의 실세와 가깝다. 경북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행시 20회로 재무부를 거쳐 금융정책과장, 재경부 기획관리실장을 지낸 정통 '모피아'이기도 하다. 채권단의 또 다른 관계자는 "유 전 사장이 혼선을 자초했다는 평가가 있지만 지지부진한 하이닉스 매각을 힘있게 추진했다는 점은 인정할 부분" 이라며 "물러났다고 유 전 사장이 밝힌 매각방침을 곧바로 무시하기는 어렵다"고 토로했다. 유 전 사장은 하이닉스 채권단 지분 15% 중 절반 이상을 매각하고 신주발행은 최대 10%만 허용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정했다. 당초 채권단은 과거 두 차례나 실패한 하이닉스 매각을 성사시키기 위해 구주 매각 없이 신주로만 매각을 진행할 수도 있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단의 한 핵심관계자는 "유 전 사장과 정책금융공사의 입장을 반영하면서 매각 성공률도 높이기 위해 신주 매각을 15%까지 확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책금융공사의 새 사장이 선임되면 유 전 사장의 주장과 채권단 입장을 조율한 '구주(채권단 지분) 5% + 신주 15%' 매각안이 유력하게 논의될 것이라는 얘기다. 지식경제부도 신주 매각 확대를 통해 하이닉스 인수 기업의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을 지지하고 있다. 다만 이 같은 시나리오가 실현되려면 정책금융공사의 새 사장 선임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세계경기 둔화와 이에 따른 반도체 가격 및 하이닉스 주가 폭락에도 하이닉스 매각을 계속 추진한다는 당국의 방침에 변화가 없어야 한다. 금융 당국의 한 관계자는 "하이닉스 매각일정이 연기되기는 했지만 매각 중단을 고려하고 있지는 않다" 며 "다만 그동안 논의된 내용과 매각환경 및 기준을 재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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