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중순 이후 잠시 반등하던 국제유가가 또다시 6년 만에 최저치로 추락하며 바닥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수요부진과 재고 증가, 달러화 강세, 이란 핵협상 타결에 따른 공급 증가 전망 등의 여파로 유가가 배럴당 30달러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국제유가가 역사적 저점에 도달한데다 미국 셰일 업계의 신규 투자가 줄고 있어 40달러가 저항선이라는 주장도 만만찮다. 다만 엇갈리는 단기전망에도 유가가 앞으로 2~3개월간 조정을 받은 뒤 올 하반기 50~60달러 정도로 반등할 것이라는 데는 대체로 의견이 일치한다.
16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지난주 마지막 거래일보다 2.1% 내린 배럴당 43.88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이는 2009년 3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올 1월22일 배럴당 45.59달러를 찍은 뒤 16%나 급등하더니 다시 6년 만에 최저치로 주저앉았다.
이날 유가 하락은 공급과잉 우려가 이끌었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3월 첫주 미국의 원유 비축량은 4억4,890만배럴로 1982년 통계 작성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유가 하락으로 미 셰일 업계의 생산량이 감소했을 것이라는 예상이 완전히 빗나간 셈이다.
또 이달 말로 시한이 임박한 이란 핵협상이 타결될 경우 이란산 원유가 쏟아지면서 유가 하락을 부채질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마나르에너지컨설팅의 로빈 밀스 수석 애널리스트는 "경제 제재가 풀린 이란이 판로를 확보한다면 앞으로 1년 안에 하루 수출량 증가분이 최대 80만배럴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통적으로 봄철에 원유 수요가 둔화되는 것도 유가 하락 요인이다.
투자가들도 유가 하락에 베팅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WTI 순매수 포지션은 10일 현재 일주일 만에 2.5% 줄며 2년여 만에 최저치로 떨어진 반면 매도 포지션은 기록적인 수준으로 증가했다. 컨설팅 업체인 리포오일 어소시에이츠의 앤디 리포 대표는 "미국과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생산이 줄지 않았고 러시아 생산은 크게 늘었다"며 "조만간 유가가 40달러를 밑돌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유가의 추가 하락 여지가 극히 제한적이라는 분석도 많다. 유가가 더 떨어지면 중동보다 생산단가가 비싼 미 셰일 업계의 공급도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게 주된 이유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미 석유추출지수는 올 2월 179.8(계절 조정)로며 전달보다 0.4%, 1년 전보다 14.4% 증가했다. 반면 원유·천연가스시추지수는 각각 17.4%, 21.4% 감소했다. 미 업체들이 기존 생산시설은 유지하고 있지만 신규 시추나 투자는 줄이고 있다는 뜻이다.
OPEC은 이날 월간 보고서에서 "올해 비(非)OPEC 국가의 원유 공급은 거의 변화가 없겠지만 미국의 셰일 생산은 연말로 갈수록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마렉스스펙트론의 게오르기 슬라보프 리서치 수석도 "현재 유가 수준으로는 미 석유 업체의 절반가량이 수익을 내지 못한다"며 "올 1월에도 유가가 40달러에 근접하자 생산량이 줄면서 반등한 점을 감안하면 지금이 바닥"이라고 말했다. 또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2008~2009년 유가가 추락했을 때도 수개월 만에 40달러대를 회복했다는 게 낙관론자들의 주장이다.
시장의 또 다른 관심사는 올 하반기 유가 전망이다. 현재 배럴당 20달러, 200달러 등 양극단의 주장이 있지만 대체로 50달러대에서 움직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EIA는 최근 "미 원유생산 시설이 1930년대 이후 최고치에 이르면서 앞으로 두달간은 생산 증가가 이어질 것"이라면서도 올해 평균 WTI 가격으로 52.15달러를 제시했다. 또 내년에는 WTI와 브렌트 가격이 각각 70달러, 75.03달러로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로이터가 지난달 말 이코노미스트 3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올해와 내년 평균 WTI 가격 예상치는 각각 54.5달러, 66.9달러였다. 미 셰일 업체들이 시장 상황에 따라 생산량을 조절하면서 국제유가의 추가 급락은 물론 'V'자형 반등도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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