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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발 위기감에 휩싸인 글로벌 투자자금이 독일ㆍ미국ㆍ일본 등 안전자산으로 몰려드는 가운데 일본 중앙은행이 디플레이션 타개를 위해 시행 중인 국채매입이 처음으로 목표치에 미달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리스 사태 이후 일본 국채수요가 급증해 일본은행이 사들일 만큼의 국채가 공급되지 않은 탓이다. 시장에서는 유로존 위기의 파장이 일본 국채의 '거품'을 부추기고 일본은행의 정책 신뢰도를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17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현지 언론들은 일본은행이 경기부양을 위한 자산매입 프로그램을 실시한 지 2년 만에 처음으로 국채매입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16일 실시된 입찰에서 일본은행은 만기까지의 기간이 2년 이하인 국채 6,000억엔어치를 매입할 계획이었으나 국채를 내놓아야 할 대형 은행들이 매각을 유보하면서 실제 매입규모는 4,805억엔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입찰은 올해 예정된 24조엔 규모의 국채매입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전문가들은 일본은행의 국채매입 규모가 목표치에 못 미친 것은 최근 유로존 위기가 부각돼 글로벌 투자자금이 안전자산으로 쏠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봤다. 특히 시장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환금성이 높은 단기국채가 각광을 받으면서 2년 이하 만기국채의 공급물량 부족을 부추긴 것이다.
실제 이날 2년 만기 일본 국채금리는 0.095%로 거래를 마쳐 2005년 7월 이후 6년10개월 만에 처음으로 0.1%를 밑도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일본은행은 일본 금융기관이 당좌예금계좌에 거치하는 초과지급준비금에 대해 0.1%의 금리를 제공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채금리가 0,1% 밑으로 떨어졌다는 얘기는 당좌예금이 없는 해외 투자가들이 0.1% 미만의 낮은 수익률이라도 안정적으로 보장받기 위해 일본 국채에 투자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고 신문은 분석했다.
신문은 유럽계 자금이 안전자산인 독일 단기국채로 몰려 6개월물 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기현상이 벌어지는 것처럼 아시아 금융기관들은 역내 안전자산인 일본 국채로 몰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재무성이 실시한 1년물 단기국고채 입찰에도 2조5,000억엔 발행에 33조엔을 웃도는 자금이 몰려들어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이 같은 쏠림현상이 심해지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고조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국채가격이 추가 상승할 것이라는 관측 때문에 국채공급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국채 버블' 형성이 가속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국채매입을 통한 금융완화 정책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일본은행의 정책신뢰도도 타격을 받게 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일본은행의 금융완화 정책이 디플레이션 해소에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번 국채매입 목표치 미달은 일본은행이 시장에서 흡수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일본 내각부에 따르면 1~3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예상치를 웃도는 전분기 대비 1.0%(연율환산 4.1%)에 달했지만 이 같은 회복세가 지속될 가능성은 낮은 실정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메릴린치의 후지타 쇼고 일본 채권 스트래티지스트는 "이번 계산착오로 일본은행은 신뢰성에 타격을 받게 됐다"며 "남은 대안은 장기물 매입뿐"이라고 말했다.
일본은행은 일본 국채수요 증대로 경기부양을 위한 국채매입이 어려워진 상황을 감안해 오는 22~23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금융완화 정책의 효과를 검증하기 위한 논의를 벌일 것으로 보인다고 신문은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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