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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파일의 주인공 스컬리가 지적인 블루톤이라면 남녀탐구생활의 해설(narration)은 무미건조한 회색톤이죠." '남자, 여자 몰라요. 여자도 남자 몰라요'로 시작하는 케이블채널 tvN의 대박 코미디물 롤러코스터의 남녀탐구생활에서 목소리 연기로 인기 상종가를 달리고 있는 서혜정(47)씨가 15일 자신이 연기한 목소리를 색깔로 표현했다. 남녀탐구생활 해설의 특징은 마치 114 안내방송처럼 감정과 리듬을 빼고 같은 속도로 기계음처럼 읽는 것이다. "연기 장면은 초절정 코믹이지만 해설은 최대한 무의미하게 처리해 반대되는 상황이 시청자들에게 절묘한 웃음을 선사하죠. 그런데 감정을 완전히 제거한 듯하지만 냉소적인 감정이 드나들어요." 다른 프로그램과 달리 남녀탐구생활은 성우가 녹음을 마친 후 배우들이 해설에 맞춰 연기를 하는 새로운 연출 방법을 시도했다. 2시간 동안 녹음하면서 회색톤을 줄곧 유지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감정이 이입되는 경우가 많아 녹음을 한 번에 할 수가 없어요. 감정이 들어간다 싶으면 녹음을 끊었다 다시 하기를 반복하죠." 지난 7월부터 시작한 프로그램은 이제 50~60대까지 시청자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1982년 서울예전 입학과 동시에 KBS 성우로 합격하는 바람에 대학을 마치지 못한 그는 학업에 대한 미련과 지적 호기심을 목소리로 연출해냈다. 1994년부터 2003년까지 인기가 높았던 미국 드라마 'X파일'의 여주인공 스컬리를 맡게 된 것도 지적인 이미지를 유지하고 싶어서였다. "10여년간 스컬리로 살았어요. 의사이면서 FBI 요원이었던 스컬리는 닮고 싶은 여성이죠. 스컬리가 되려고 머리 모양도 똑같이 바꿨어요." 행운을 가져다준 남녀탐구생활은 오락 프로그램을 해보지 않은 그에게 도전이자 모험이었다. 그동안 쌓아온 차분한 이미지가 무너질까봐서였다. 그는 "'중견 탤런트 이순재씨가 시트콤에서 망가져도 정통극에서 여전히 인정받지 않느냐'는 제작진의 설득에 흔쾌히 결정했다"며 "지금은 지적인, 그리고 오락적인 목소리 둘 다 거머쥔 느낌"이라고 말했다. 프리랜서인 그는 지난해보다 1.5배 정도 일이 늘어났고 수익도 늘어났다. 하지만 세간에 알려진 것만큼 광고 녹음은 많지 않단다. 유명 해외 스포츠 브랜드와 모 은행의 CF에 등장하는 목소리는 그의 목소리를 따라 한 '짝퉁'이라는 것. "명품이 있어야 '짝퉁'이 생기잖아요. 제 목소리가 명품이라는 데 만족하고 행복해요." 28년 성우 경력으로 동물 소리, 갓난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목소리의 가짓수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그는 이제 목소리를 디자인하는 경지에 이른 진정한 프로다. 다시 태어나도 성우가 되고 싶다는 그는 "성우는 연륜이 깊어져야 비로소 목소리에 색깔을 입힐 수 있다"며 "좋은 와인이 해를 거듭할수록 맛이 깊어지듯 성우는 많은 경험을 통해 상황에 맞게 목소리를 디자인할 수 있어야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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