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기술이 기업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세계적인 기업들은 업종을 불문하고 친환경 기술이 미래를 좌우한다고 보고 기술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철강·정유·석유화학 등 에너지 사용량과 탄소 배출량이 많은 분야의 기업들은 에너지 이용 효율화, 온실가스 감축, 청정생산, 자원순환 기술 등을 개발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모든 산업 분야에서 친환경 기술이 중요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치열한 녹색기술 전쟁이 벌어지는 분야는 바로 자동차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은 자동차 관련 환경규제를 계속 강화하고 있어 앞으로는 친환경차 기술을 확보하지 못한 업체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이 지금까지 상용화한 미래형 친환경차는 하이브리드차와 전기차다. 하이브리드차는 전기모터와 내연기관을 함께 사용하는 방식이고 전기차는 그 자체로는 배출가스도 매연도 없지만 사회의 전력수요를 증가시킨다. 어디선가는 화력이든 원자력이든 추가로 전력을 생산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이같이 전동화된 자동차의 한계까지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이 될 차는 뭘까. 전문가들은 주저하지 않고 수소연료전지차를 말한다. 지금은 고비용·저효율 방식으로 수소를 얻어야 하지만 언젠가는 지구의 대기와 물에 무한대로 존재하는 수소를 값싸게 추출할 방법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 시기를 바로 '수소 시대'라고 부른다.
그때가 되면 크게 두 가지 형태의 자동차가 거리를 다니게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때로는 먼 거리를 달려야 하는 가정 및 업무용 차는 수소연료전지차가 대세를 이루고 도시 내 이동을 위한 차 또는 도심용 렌트 및 카셰어링 차량으로는 전기차가 주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때문에 글로벌 주요 자동차 메이커라면 하이브리드·전기차·수소연료전지차 기술을 모두 연구해야 한다. 현대·기아차는 하이브리드와 전기차의 경우 후발주자로 출발했지만 선도 업체와의 기술격차를 거의 좁혔고 수소연료전지차 분야는 세계에서 가장 앞선 기술을 축적한 상태다.
현대차의 활약에 힘입어 우리나라는 가장 먼저 수소연료전지차를 양산하는 나라가 됐다. 2000년 현대차는 미국 캘리포니아 연료전지 시범사업에 참여하면서 '싼타페'를 모델로 한 수소연료전지차를 선보인 후 2004년에는 미국 국책사업인 연료전지 시범운행 시행사로 선정돼 미 전역에서 32대의 차량을 운행하며 업계를 주도할 만한 기술을 확보했다. 현대차는 이때 만든 '투싼ix 수소연료전지차'를 지속 보완해 올 2월 세계 최초로 수소연료전지차 양산체제를 갖췄다. 글로벌 카메이커들이 기술 각축을 벌이는 무대에서 세계 최초 양산이라는 이정표를 세운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을 친환경차 기술의 메카로 만들어야 하는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메르세데스벤츠·GM·도요타 등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도 수소연료전지차 분야 기술을 꾸준히 개발하고 있지만 이들의 양산 가능 시기는 오는 2015년 이후가 될 것으로 글로벌 자동차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이는 현대차에 비해 최소 2년 이상 늦은 행보다. 국내 자동차 업계 전문가들은 일본이 하이브리드차 분야를 주도한 것과 같이 수소연료전지차는 한국이 이끌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한국이 친환경차 기술의 새로운 중심이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술 주도권을 확실히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자동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이 친환경차 기술을 중심으로 한 각종 친환경 산업기술의 메카가 된다면 막대한 시너지가 창출될 것"이라면서 "정부와 학계가 기업과 입체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시스템, 외국 기업 어느 곳이라도 한국에서 친환경 기술을 연구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 방안도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한국이 녹색기술의 대표 국가가 되는 것은 수출·일자리·특허 등 경제적 효과뿐만 아니라 친환경 선진국이라는 국가이미지 상승 효과도 얻을 수 있다"면서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국가의 미래를 건 기술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