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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경제에도 王道는 없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을 보고 엉뚱하게도 학창 시절 자주 입에 올렸던 격언이 떠올랐다. ‘학문에 왕도는 없다.’ 아무리 환경과 여건이 좋아도 공부를 쉽게 잘할 수 있는 지름길은 없으며 본인 스스로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요즘 말로 ‘열공(열심히 공부하자)’의 각오를 다지기 위해 책상 앞, 영어사전 등 눈에 자주 띄는 장소나 물건에 큼지막한 글씨로 써놓았던 기억이 새롭다. 아쉽게도 늘 마음과 행동이 따로 놀았지만…. 왕도가 없는 게 어디 공부뿐일까. 경제도 마찬가지다. 한미 FTA. 태풍은 일단 지나갔지만 먹구름은 여전하다. 어쩌면 훨씬 강한 태풍을 맞을지도 모른다. 내부 설득과 국회 비준까지의 과정은 물론이고 협정 발효 후 전개될 경제의 모습도 그렇다. FTA 반대세력의 반발과 투쟁 의지는 누그러지기는커녕 더 강해지고 있다. 국회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반대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의원만 50여명이나 된다. 3년 전 칠레와의 협정비준안은 농촌지역구 의원 등의 반발로 세 차례나 처리가 무산된 끝에 7개월 만에 겨우 통과됐다. 반발 강도와 대선ㆍ총선 등으로 이어지는 정치 일정을 감안하면 한미 FTA 비준의 험난함은 이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해를 넘기고 내년 처리도 어려울지 모른다. 이제는 좀 냉정해져야 한다. 반대하는 사람도 찬성하는 사람도 모두 마찬가지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 상황을 점검하고 다가올 날들을 봐야 한다. 무역으로 먹고살았고 앞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는 우리 경제는 지금 일본과 중국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가 돼 미래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위기 극복과 재도약을 위해서는 개방이 불가피하며 한미 FTA는 그 핵심 수단 중 하나다. 미국과의 FTA를 우리가 일본ㆍ중국보다 먼저 체결함으로써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김근태, 천정배 의원의 FTA 반대 단식투쟁을 두고 ‘글로벌 경제 시대에 개방을 확대하지 않고도 선진국을 만들 대안이 있다면 제시하라’는 강봉균 전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의 말은 FTA의 필요성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FTA에는 농축산업 피해와 양극화 심화 등 그늘도 만만치 않다. 반대 주장을 일축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피해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며 협상 자체를 반대하는 데는 결코 손을 들어줄 수 없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주장은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느낌을 준다. 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는 농산품ㆍ자동차 등 쟁점 몇 가지만 비교해도 우리의 손해가 최대 192억여달러, 최소 72억여달러에 달하는 반면 이익은 최대 9억여달러, 최소 6억여달러에 그칠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망국, ‘미국의 51번째 주’ 등 자극적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쪽이 그렇게 일방적으로 손해만 보는 것은 협상이나 거래가 아니다. 강탈이나 조공이다. 대통령이, 정부가, 협상단 관료들이 민족의 대역 죄인이 되려고 작정했으면 모를까 제정신으로 이런 협상을 할 리가 없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한미 동맹관계 붕괴 지적이 나올 정도로 역대 어느 정부보다 자주를 내세운 정부 아닌가. 그런데도 선동적 어구로 반대하는 것은 부정적 측면을 과장해 판을 깨버리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FTA는 그 자체가 우리 경제의 구세주나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하다.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 것은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결과가 좋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좋은 참고서를 가진 것만으로는 성적을 올릴 수 없으며 그것을 열심히 풀면서 내 것으로 소화해야 하는 이치나 같다. 터무니없는 반대와 비관이나 마찬가지로 지나친 낙관과 과신도 금물이다. 우리의 강ㆍ약점을 더욱 세밀하고 정교하게 분석해 강한 것은 경쟁력을 더 높이고, 피해 분야는 타격 최소화 또는 전업ㆍ전직 등 새 활로 대책 마련 등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반대세력도 설득할 수 있다. 한미 FTA가 독인지 약인지는 우리 하기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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