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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미스김 라일락


얼마 전 직원들과 함께 고추 생산량 조사와 농번기 일손을 돕기 위해 청양고추 재배 농가를 방문했다. 씨앗 전량을 미국으로부터 수입하고 있고 농가에서 고추를 팔 때마다 로열티를 지불해야 하는 청양고추가 사실은 우리가 개발한 품종이라는 것에 대해 농민들과 대화를 나눴다. 지난 1980년대 청양고추를 개발했던 국내 종묘회사는 외환위기 때 미국의 다국적 기업에 넘어갔다. 현재 국내에서 유통 중인 채소 종자의 50%를 다국적 기업이 소유하고 있다. 올해부터 10년 동안 지급해야 할 로열티도 8,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 세계각국은 식량안보와 막대한 로열티 수입 등 고부가가치 전략산업 육성 차원에서 종자주권을 확보하기 위해 '전쟁'을 치르고 있다. 씨앗 종자를 농업 분야의 반도체라고 부르는 이유다. 국제종자연맹(ISF)에 따르면 2011년 세계 종자산업 시장은 450억달러 규모였다고 하며 앞으로 인구증가와 기후변화에 식량난이 가중되면서 수요는 증가하고 공급의 불안정성이 심화되면서 종자주권을 둘러싼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세계 종자시장의 70%를 10대 다국적 기업이 차지하고 있고 국내 업체가 차지하는 비율은 불과 0.89% 밖에 되지 않는다.

선진 종자강국에 비해 다소 늦었지만 우리 정부도 2009년에 '2020 종자산업 육성대책'을 마련해 10년간 4,9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다. 현재 민간육종연구단지 조성사업(씨드밸리사업)과 핵심 종자개발사업(골든씨드 프로젝트)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국내 기업이 외국계 종자기업을 인수하며 300여종의 대한민국 대표 품종의 종자주권을 되찾아왔다는 소식이 들리기도 했다. 계약 내용에 따르면 청양고추도 글로벌 판권은 제외돼 아쉽지만 국내판권은 확보했다고 한다.



미국과 유럽에서 관상용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미스김 라일락'이라는 꽃이 있다. 이름만 들어도 짐작되겠지만 평범하지 않은 사연이 있다. 1947년 미 군정청 소속 식물 채집가가 도봉산 기슭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털개회나무의 종자를 채취해 미국으로 그냥(?) 가져간 후 품종을 개량한 것이다. 당시 자료 정리를 돕던 대한민국 여성의 성을 따서 미스김 라일락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구상나무를 포함해 우리 고유종이었지만 역수입을 해야 하는 품종들, 아니 그 이전에 우리 이름을 잃어버린 품종들이 너무나 많다. 미스김 라일락은 다시 우리에게 돌아올 수 있을까.

윌리엄 블레이크가 "모래 한 알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고 한 것처럼 우리도 모래알만큼 작은 씨앗과 우리 산하에 지천으로 퍼져 있는 아름다운 꽃과 풀들에서 '종자강국'의 미래를 읽고 준비하는 혜안을 키워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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