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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정부서울청사에는 오전부터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최근 우리 사회의 핫이슈로 부상한 노동 시장 개혁 문제를 다루기 위한 노사정위원회 노동시장구조개선특위가 열리기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특위에서는 근로시간 단축과 정년연장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 등 엄청난 휘발성을 가진 사안들을 다루기로 돼 있어 쉽지 않은 협상과정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아니나 다를까. 오후2시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김대환 노사정위원장과 노동계 대표 간에 회의 진행방식을 둘러싸고 고성이 터져 나왔다. 노동계에서는 단순히 안건을 보고만 하자고 주장했고 노사정위원장은 안건 심의에 들어가자고 맞섰다. 우여곡절 끝에 전문가 그룹에서 만든 안을 가지고 절충에 나섰지만 수차례 정회를 거듭하며 하루 종일 실랑이를 벌였다.
양측은 '노동 유연성'과 '노동 이동성' 등 합의문에 들어갈 용어를 둘러싸고도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노사정은 이날 무려 5차례 정회를 해가며 자정까지 10시간 동안이나 난상토론을 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하고 '대표자 회의에서 추가로 논의하자'는 선에서 회의를 끝냈다. 노사정 대표는 휴일인 21일에도 회동을 해 합의문 타결을 시도했지만 결론 도출이 쉽지 않았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노사정이 23일 내놓은 것이 '노동시장 구조개선의 원칙과 방향에 관한 기본 합의문'이다.
현 노사정위 현실 제대로 반영 못해
1998년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노사정 대타협을 이뤄낸 후 10여년을 겉돌기만 하던 노사정위가 모처럼 결과물을 내놨다는 점에서는 일단 긍정적이다. 그러나 합의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대했던 내용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합의문에는 '동반자적 입장에서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추진한다'는 등 원칙적 언급만 들어 있을 뿐이다. 노동 시장의 이중구조 문제와 임금·근로시간·정년연장 등 세부현안 조율은 내년으로 미뤄둔 상태다. 두루뭉술한 원칙에 합의하는 데 이 같은 어려움을 겪은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민감한 현안 조율과정에는 상당한 진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번 노사정 협상과정은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우리나라는 왜 북유럽 국가 같은 사회적 합의가 잘 안되는 것일까. 협상 문화가 성숙하지 않은 등 사회 분위기 탓도 있지만 우리나라만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점의 영향이 크다. 무엇보다 우리는 사회적 논의를 위한 틀이 상당히 경직돼 있다. 이는 노사정위 구성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노사정위는 노동계와 경영계·정부·공익위원 등 10명으로 이뤄져 있다. 문제는 협상에 핵심 역할을 하는 노사위원에 전국 규모의 노동자 단체와 사용자 단체 대표자들이 참여하도록 법에 명시돼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노조 조직률 10%에 불과한 대기업 노조들이 협상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이번 특위에도 우리나라 대기업 노조를 대표하는 한국노총이 노동계 인사로 나와 사사건건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다.
전국 단위의 노동조합은 국내의 대표적인 사업장을 거느리고 있어 과보호를 받고 있는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들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이렇다 보니 양대 노총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양극화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적극성을 띄지 않는다. 그들 자신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보호받고 있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에 고용조건과 임금 등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비정규직·청년 등 보호장치 마련 필요
또 노동 시장에서 청년 실업률은 여전히 고공행진을 하고 있고 여성들의 사회 참여도 부진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국 단위의 사업장을 가진 노사끼리만 모여 앉아 노동 시장 구조개혁을 논의하는 것은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다. 사회가 다양화되는 시대에는 노사정 협의의 틀도 과거와는 달라져야 한다. 점점 심해지는 양극화를 조금이라도 완화하기 위해서는 비정규직과 청년·여성 등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이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 장치가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사정위의 참여 주체와 논의 주제를 좀 더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1년이 넘도록 국회에 발이 묶여 있는 노사정위원회법 개정 작업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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