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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신 재난징비록, 국민이 함께 쓰자-장남식 손해보험협회장


임진왜란 이후 조선이 왜(倭)에 짓밟힌 원인을 분석해 재발방지의 틀을 만든 서애 류성룡의 '징비록'에는 조정의 실책에 대한 반성 이외에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전란 초기 민심의 이반으로 백성들의 책임의식과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한 점이 패배의 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는 몇 년 후 병자호란의 치욕적인 참패로 이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수백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또 다른 형태의 난(亂)과 싸우고 있다. 화재·폭발·붕괴 등과 같은 재난이 일상화된 요즘 정부와 민간 전문가들이 모여 재난관리시스템 구축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주도의 재난관리시스템 구축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국민의 자발적 참여의식이다. 지난 10년간 국내 사회재난 발생건 수와 인명피해 규모는 매년 30여만건과 40여만명 수준을 한결같이 유지하고 있어 재난이 일상화된 느낌이 든다.

문제는 이들 사고의 대부분이 누군가의 과실로 인해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재난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대부분 국민들이 '피해자 관점'에서만 재난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국가가 나서서 재난에 관한 모든 과정을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듯하다.

개인도 예기치 않게 가해자가 돼 많은 인명과 재산피해를 낼 수 있지만 이를 의식하기란 쉽지 않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전체 보험료 중 약 80% 이상이 자기를 위한 보험이다. 피해자 관점에서 스스로 위험 대비를 철저히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타인의 생명과 재산 피해배상을 위해 자발적으로 가입한 보험의 비율은 자동차보험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의 경우 2% 남짓에 불과하다. 반면 미국이나 독일 등 선진국의 배상책임보험 계약 비중은 20%를 넘는다.



이제는 우리도 가슴속 깊이 각인돼 있는 재난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개인의 사소한 실수 하나로 많은 사람에게 신체적·경제적 피해를 입힐 수 있는 가해자가 될 가능성 또한 높다는 것을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재난방지를 위한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고 이러한 인식이 전 사회에 확산될 때 우리 사회가 비로소 안전해질 것이다.

또 재난배상책임 보험 도입 등 재난에 관한 사회적 대응체계를 우선적으로 제도화함으로써 자연스러운 인식전환을 유도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끊이지 않는 대형 재난사고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수백년 전 류성룡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우리 모두가 재난극복을 위한 21세기 신(新) 징비록을 써 내려가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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