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7일(현지시간) 그리스의 2차 총선을 앞두고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이탈 가능성이 고조되면서 그리스 은행권의 예금인출이 급증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12일 그리스인들의 하루 예금인출 규모가 지난달 평균 1억유로에서 이달 들어 5억유로로 크게 늘어났다고 보도했다. 특히 스페인의 구제금융 신청 소식이 전해진 지난 11일에는 7억유로 이상이 은행을 빠져나갔다. 블룸버그는 "예금인출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재총선 이후 이러한 상황이 이어진다면 그리스의 금융 시스템 붕괴는 시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그리스의 뱅크런이 급증한 것은 긴축에 반대하는 급진좌파연합 시리자의 집권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일 그리스 정치분석 연구소인 메트론애널리시스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1차 총선 1위였던 우파 성향의 신민주당과 반 긴축을 주장하는 시리자의 지지율이 각각 27.1%, 26.4%로 나타나 박빙의 승부를 예고했다.
현재 신민주당은 "가급적 유럽연합(EU) 등이 제시하는 긴축재정안을 수용해 구제금융 지원을 받아내자"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시리자는 "최악의 경우 유로존에서 탈퇴하더라도 현재의 긴축재정안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시리자 대표는 이날 총선을 앞두고 가진 콘퍼런스에서 "2차 총선 이후 긴축에 찬성하는 정당과는 연립정부를 구성하지 않을 것"이라며 "과반을 차지하게 되면 (EU,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 등) 트로이카가 요구한 고통스러운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정권을 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만약 재총선 결과 시리자가 승리한다면 '시리자 집권→긴축 거부→유로존 이탈→드라크마 회귀'의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미국 CNBC는 그리스가 드라크마로 회귀할 경우 유로화 대비 드라크마화의 가치가 50% 평가절하될 것으로 예상했다.
CNBC는 그리스 정부가 유로존을 탈퇴할 경우 1유로 대비 1드라크마로의 리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변경)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은행에 예금 1만유로가 있다면 1만드라크마로 바뀌면서 자산 가치가 하루 아침에 반토막 나는 셈이다.
모리츠 크래머 스탠더드앤푸어스(S&P) 유럽 국가 신용등급 부문 대표는 "1만유로의 은행 계좌가 1만드라크마로 바뀌는 것을 지켜볼 그리스인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며 "그리스 국민들은 자신의 예금이 드라크마화로 바뀌는 것을 막기 위해 은행에 달려가 자신의 통장에서 유로화를 인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뱅크런 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진 그리스 은행들은 위기 상황을 맞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며 "기업과 개인 파산이 속출하고 세수도 줄면서 그리스 재정은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