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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앤 조이] 2500살 유교, 250살 자본주의에 '회초리' 들다

■ 부활하는 유교…가치의 재발견<br>윤리·신뢰의 덕목 깨우쳐<br>교양강좌·서원체험 등 성황<br>기업서 접목 새 경영철학 주도

중국 공자 사당인 공묘에서 한국 유림 단체 회원들이 전통 예법에 맞춰 예를 올리고 있다.

영화 '공자'의 한 장면.

'공자성적도(孔子聖蹟圖)' 모음전.


얼마 전 막을 내린 영화 '공자-춘추전국시대'는 유교의 시조인 공자를 소재로 했다는 점 외에도 중국정부의 노골적인 밀어주기로 세간의 화제가 됐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영화제작 중 후메이 감독을 직접 만나 "영화 '공자'는 중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매우 중대한 도전이며 지금이야말로 공자의 사상과 위대한 업적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공자의 개봉을 앞둔 지난 1월 23일 중국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던 영화 '아바타'를 3D로만 상영토록 했다. 3D 상영관이 많지 않은 중국 실정을 감안할 때 이는 사실상의 상영제한 조치와도 같은 수준이다. 20세기 초 서양의 근대문명을 배우자던 '5ㆍ4운동'과 마오쩌둥이 주도한 '문화대혁명'으로 수명을 다했던 유교가 새롭게 부활하려는 중국의 움직임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유교의 부활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유교 정신을 가르치는 교양강좌는 몰려든 수강생들로 성황을 이루고 유교적 가치관을 기업경영에 접목한 새로운 경영철학도 주목을 끌고 있다. 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그동안 우리사회를 풍미했던 서구의 물질문명과 개인주의적 가치가 인간소외나 사회갈등 같은 부작용을 낳으면서 자기성찰과 타인에 대한 배려를 중시하는 유교적 가치관에 사람들이 다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조선왕조 몰락 이후 '망국'의 원흉으로 내몰렸던 유교의 숨겨진 가치가 21세기 들어 현대인들에게 재조명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유교의 가치를 다시 본다 지난 2일 성균관대 유학대학원에는 평소 쉽게 보기 힘든 사회 저명인사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송용로 전 삼성코닝 사장, 박노빈 전 에버랜드 사장, 이중구 전 삼성테크윈 사장, 이우희 전 에스원 사장 등 삼성그룹 최고경영자(CEO) 출신 인사들에서부터 김영석 전 우석대학교 총장, 이완근 신성홀딩스 회장, 박재갑 서울대 의대 교수, 전윤철 전 감사원장까지 그야말로 쟁쟁한 거물급 인사들이 모인 이유는 이번 학기부터 등록한 유학대학원 석사과정의 수업을 듣기 위해서다. 지난 1988년 처음 개설된 유학대학원에 이번처럼 사회 저명인사들이 한꺼번에 모두 몰린 건 매우 이례적인 일로 등록 경쟁률이 2대1에 육박할 정도였다는 후문이다. '유교 배우기 열풍'은 비단 사회 유명인사들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성균관대가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종로구청과 손잡고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진행한 '인문학 명품강좌'는 강의를 듣기 위해 몰려든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조선시대 선비정신에 대해 알아보는 '조선의 선비를 만나다'를 비롯해 '동양고전의 지혜-논어', '전통예절과 다도' 등으로 이뤄진 이 강좌는 당초 예상 수강인원 160명을 훨씬 넘어선 570명의 시민들이 몰려들 정도로 호응을 얻었다. 이에 힘입어 성균관대는 올해도 시민을 대상으로 한 유학 강좌 프로그램을 계획중이다. 지난 2002년 처음 문을 연 경북 안동 도산서원의 선비문화수련원도 해를 거듭할수록 시민들의 참가가 크게 늘고 있다. 선비문화수련원의 수련생은 개설 첫해인 2002년 8회 224명에서 2008년 54회 3,912명으로 급증했으며 지난해에는 124회 6,642명으로 1년 새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참가자들도 초기엔 학생 위주였지만 점차 행정부처 공무원과 경제단체 및 기업체 임직원, 외국인 등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유교문화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이처럼 높아지자 지난해 도산서원은 435년만에 퇴계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는 '향사례'의 빗장을 풀었다. 그동안 제한해온 일반인들의 참관을 허용함으로써 조상에 대한 섬김과 경외심을 배우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2008년까지 오전 1시에 올리던 향사례 시간도 지난해부터는 오전 11시로 변경했다. 절에서 머물며 불교의 가르침을 익히는 '템플 스테이'처럼 유교 전통을 체험해볼 수 있는 '서원(書院) 스테이'도 등장했다. 한국서원연합회는 지난 1월 소수ㆍ설봉ㆍ남강ㆍ돈암ㆍ무성서원 등 전국 주요 서원에서 1박2일~2박3일간 머무르면서 유교 문화를 몸소 체험하는 서원 스테이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초ㆍ중ㆍ고교생과 가족단위, 외국인 등 총 1,400여명의 참가자들은 옛 선비들처럼 유건(儒巾)을 쓰고 도포를 입은 채 성균관 예절학교의 강사진에게 각 서원의 역사와 유학자의 생애, 유교경전, 다도 등의 선비문화를 배우고 인근 문화재를 둘러봤다. 서원연합회 관계자는 "문화재로만 취급되던 서원을 일반인들에게 개방해 전통 유교문화를 널리 알리는 계기로 삼을 것"이라며 "올 여름에는 프로그램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상북도는 오는 4월부터 10월까지 7개월간 '2010 세계유교문화축전'을 개최한다. 안동시와 영주시, 문경시, 예천군 등 경북 북부권 9개 시ㆍ군과 함께 진행하는 이번 행사는 '사람을 받들고 세상을 사랑하고(敬人愛天)'라는 슬로건 아래 유교문화와 관련된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이 지역 고택과 정자 등에서는 매 주말마다 유교문화 공연이 펼쳐지고 유교적 덕목을 경제이념과 결부시킨 CEO 포럼, 유교문화 UCC(손수제작물) 공모전 등이 선보일 예정이다. 조직위원회측은 "이번 축전을 통해 우리사회에 뿌리내린 유ㆍ무형의 유교자산을 지속 가능한 문화와 관광산업으로 승화시키겠다"고 말했다. 미래를 이끌어갈 새로운 가치, 유교 미국의 전략이론가이자 미래학자였던 허먼 칸은 지난 1970년대 초 자신의 저서 '미래의 체험'에서 앞으로 다가올 혁명적인 미래상품 100가지를 예측했다. 그 후로 40여년이 지난 지금 그가 예측한 100개 상품 중 대다수가 하나 둘 현실로 입증되고 있다. '현금자동지급기(ATM)'와 '초고속열차', '비디오리코더(VCR)', '위성항법장치(GPS)'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그의 예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당시 그는 다가올 21세기에 서구적 자본주의가 몰락하고 '유교적 자본주의'가 그 빈자리를 대신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교육을 중시하는 동양적 사고방식, 가족과 향토를 소중히 여기는 대가족 문화, 신뢰와 예의를 바탕으로 한 전통사회, 윤리를 중시하는 집단적 국가의식, 강한 유교적 문화의 동질감이 중시될 것이라는게 허먼 칸의 예측이었다. 그의 예언은 이번에도 적중하는 걸까. 지난달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열린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도미니크 바르조 프랑스 소르본대 교수는 "이병철 회장은 한국식 신유교주의에 일본의 경영시스템을 접목해 삼성의 고유한 경영모델로 발전시켰다"고 평가했다. 그동안 현실과 동떨어진 고리타분한 이념이자 문화로 천대받았던 유교적 가치가 미래사회를 이끌어갈 새로운 원동력이 될 가능성을 엿볼만한 대목이다. 2,500년 유교역사를 형상화한 소설 '유림'의 최인호 작가는 "유교는 버려야 할 낡은 유산이 아니라 지금 우리사회에 필요한 삶의 재무장운동"이라고 강조한다. 청렴결백하고 직분에 충실하며 부모에게 효도하는 유교적 미덕이야말로 21세기에 가장 요구되는 가치관이라는 뜻이다.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ㆍ동양학부 교수는 "사회가 아무리 발전을 거듭해도 사회를 움직이는 제도나 시스템은 결국 사람이 운영하는 만큼 무엇보다 개개인의 도덕성이 더욱 중요시될 수밖에 없다"며 "개인의 도덕적 완성을 통해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유교의 핵심철학인 '수기치인(修己治人)'을 잘 실천한다면 우리사회를 더욱 따뜻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기업경영에서도 유교적 가치가 점차 중시되고 있다.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시부사와 에이치는 저서 '논어와 주판'에서 "정당한 부(富)는 부끄럽지 않고 지속 가능해야 한다"며 도덕과 경제의 합일사상을 역설했다. 즉, 왼손에는 건전한 부의 윤리를 강조하는 '논어', 오른손에는 경제를 뜻하는 '주판'을 들고 도덕에 어긋나지 않는 경제활동을 하라는 의미다. 신창호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모든 경제활동의 기반에 항상 의리와 도덕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 유교의 기본사상"이라며 "열린 마음으로 의리와 믿음을 갖고 예의와 지성까지 겸비한 기업가 정신이 미래경제를 선도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유교적 가치관이 우리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봉합하는데도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신정근 교수는 "공자가 강조한 '인(仁)'은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이라며 "눈앞의 이해관계보다 타인에 대한 속 깊은 배려를 중시하는 유교야말로 사회통합의 가치로 충분히 활용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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