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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필리피노 무력감이 주는 교훈


박원순 서울 시장이 지난 11~14일 필리핀을 찾았을 때 메트로마닐라시 당국은 오토바이 순찰대를 보내 서울시대표단을 밀착 경호했다.

교통체증 심하기로 악명 높은 마닐라지만 순찰대의 안내 덕에 대표단은 수월하게 이동했다. 순찰대는 버스가 통과할 교차로를 미리 점령해 다른 차량의 통행을 막았고 보행자 신호도 무시했다. 차량 정체가 극심할 땐 역주행도 서슴지 않았다. 서울 시장에 대한 예우였지만 대표단 일행이 느끼기에도 과도하고 황송했다. 놀라운 점은 이런 통제에 대해 필리피노(필리핀 사람)들이 별다른 불만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리핀에 진출한 국내기업 주재원과의 대화에서 이 같은 필리피노의 반응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주요 가문이 정치ㆍ경제계를 오랜 기간 장악해온 필리핀은 일반시민 스스로 상류층을 자신과 다른 존재라고 생각한다는 얘기다. 부자들을 두고 파출부나 운전사로 고용해주는 고마운 존재로 인식할 정도라고 하니 행정당국의 조치를 군말 없이 따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필리핀에서는 계층 간 넘기 힘든 벽 때문에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도 신분상승의 한계에 부딪힌다. 결국 인재들은 나라 밖으로 향한다.

정부와 기업가는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제조업 등 기간산업은 소홀히 하고 당장 돈 벌기 쉬운 콜센터 등 서비스업과 건설업에만 치중한다. 인재가 있어도 마땅히 설 자리가 없는 셈이다.



필리핀은 196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가 우러러보던 동아시아의 경제 강국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한참 역전됐다. 여기에는 폐쇄적인 사회 시스템과 근시안적인 산업 육성이 만들어낸 악순환이 한몫했고 앞날도 밝지 않다고 주재원들은 입을 모은다.

필리핀의 현실이 오롯이 남일 일까.

우리나라의 소득분배수준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점차 나빠지고 중산층은 무너져 가고 있다. 서울대는 상대적으로 가정형편이 나은 강남이나 특목고 출신 비중이 높아져간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표현은 이젠 옛말이 되고 있다.

계층 간 경계가 뚜렷해질수록 사회 활력은 떨어지고 국가 경쟁력은 손상을 입는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우리 사회의 문이 지금 닫히는 중인지 반대인지, 그래서 앞날은 밝은지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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