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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물가불안과 가계부채 급증 우려에도 불구하고 기준금리를 3개월 연속 동결한 것은 '해외변수 불확실성'과 '성장률 둔화'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미국 경기둔화가 지속되거나 유럽 재정위기가 악화될 경우 한은이 앞으로 남은 세 번의 금통위에서도 정책금리를 현 수준에서 묶어둘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앞으로 한은이 물가관리에 실패했다는 비판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날 회의에서도 물가보다는 성장에 맞춘 정책결정에 반란표가 나왔다. 금통위는 8일 내놓은 '통화정책방향'에서 금리동결 이유에 대해 "주요국 경기의 부진, 유럽 지역 국가채무 문제, 국제금융시장 불안 등이 하방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기준금리를 동결했던 8월 통화정책방향에서 이들 요인이 단순히 하방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한 것과 비교하면 해외변수 불확실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최우선 잣대가 '물가 수준'이 아니라 '해외변수'로 무게중심이 옮아가고 있다. 미국과 유럽 경제가 흔들릴 경우 국내총생산(GDP)에서 52%를 차지하는 한국 수출이 타격을 받게 되고 이는 내수소비까지 위축시켜 성장률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짙게 깔려 있다. 이날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김중수 총재가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도 '불확실한 해외변수'였다. 세계경제의 성장축인 미국은 이달 초 올해 성장률을 기존 2.7%에서 1.7%로 1.0%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지난달의 경우 일자리 창출은 '제로(0)'를 나타냈고 실업률은 9.1%까지 치솟았다. 경기둔화가 아니라 경기침체(리세션)나 더블딥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글로벌 금융시장을 짓누르고 있다. 유로존(유로화 통용 17개국)의 불안감도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김 총재는 "이 같은 해외변수가 경제의 전방적인 하락위험을 과거보다 크게 하고 있다"면서 "이달 예정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경기부양 발표, 선진7개국(G7) 회의,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통화정책 등을 종합적으로 보고 (통화정책을)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은이 '해외요인'과 '성장률'을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로 인식함에 따라 물가목표관리제는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다. 올해 8월까지 물가 상승률은 4.5%에 달했고, 특히 8월의 경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3%를 기록, 3년 만에 최고 수준을 나타냈다. 한은은 현재 3%를 기준축으로 2~4%에서 물가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 남은 4개월 동안 물가가 3% 초반까지 떨어져야 4%선에서 물가를 잡을 수 있다. 사실상 올해에는 물가목표관리를 충족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김 총재도 이를 처음으로 인정했다. 그는 이날 간담회에서 "올해 물가가 4%에서 제어될 수 있을까. 어려운 과제라고 본다. 4% 물가 수준이 달성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김 총재의 초점이 '물가'보다는 '해외변수'에 맞춰진 데 대해 금통위 내부에서 반발도 나타나고 있다. 만장일치에 실패한 것은 5월에 이어 올 들어 두 번째다. 지난달 금통위에서는 만장일치로 금리동결이 결정됐지만 이날 금통위 회의에서는 일부 위원들이 기준금리 동결에 반대하며 금리인상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시장에서는 미국과 유럽 변수가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점을 이유로 한은이 올해 정책금리를 현 수준에서 동결할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이명활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금융연구실장은 "물가 수준만 보면 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해외변수가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다"면서 "현 상황에서는 금리를 인상함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는 만큼 올해 추가적인 금리인상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만 금리결정의 주요 변수로 대외불안을 중시한다는 말을 뒤집어보면 대외 불안요소가 누그러질 경우 금리인상에 다시 시동을 걸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가 된다. 5월 금리동결에 반란표가 나온 후 열린 6월 금통위에서는 기준금리가 인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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