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얼마나 될까.’ 과거에 비해 경제적으로는 풍부해졌지만 한국인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다. 한창 나이에 놀고 지내는 청년 백수가 100만명을 넘어서고, 수십년 직장생활을 해도 노후대책은 고사하고 내 집 하나 장만하기 어려운 현실. 정치ㆍ사회적 불안과 리더십의 부재로 인한 혼란, 치열한 경쟁 등이 겹쳐지면서 한국인들의 행복지수는 갈수록 추락하고 있다. 최근 한 조사기관이 실시한 설문조사는 충격적인 한국인의 의식을 보여줬다. ‘한국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는 응답은 4명 중 한 명. 나라의 중추인 30~40대 가운데 약 35%는 ‘지난 1년간 이민을 심각하게 고려했다’는 것이다. 송병락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는 “국민이 행복하지 않으면 나라에 대한 인식이 낮아지고 국격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경제가 발전하고 국제적인 위상이 높아져도 구성원이 행복하지 않다면 ‘절름발이’ 국가일 뿐이다. ◇경제 선진국, 행복 후진국=인구 100만명, 1인당 국민소득 1,400달러 수준에 불과한 히말라야 산기슭의 왕국 부탄은 ‘가난한 나라’보다는 ‘행복한 나라’로 세계에 이름을 알리고 있다. 전세계 국가들이 국내총생산(GDP) 기준의 성장 경쟁에 혈안이 돼 있을 때 부탄은 GDP 대신 국민총행복(GNH)을 주창, ‘경제 선진국’이 곧 ‘행복 선진국’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세계에 던졌다. 소득은 낮지만 무분별한 발전 대신 전통과 자연환경 보존을 중시하는 자급자족의 나라 부탄은 영국 신경제재단(NEF)과 레스터대학이 각각 실시한 각국 행복도 조사에서 세계 178개국 가운데 1위와 8위를 차지해 성장에만 몰두하던 세계 각국에 ‘행복’의 의미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사실 ‘누가 누가 행복한가’ 순위를 매기기는 어렵다. ‘행복’이라는 개념을 수치화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 판단 기준도 애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별 행복도 조사 순위는 조사 기관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경제발전과 복지가 조화를 이룬 덴마크ㆍ스웨덴 등 북구 유럽이 높은 점수를 얻는 경우도 있고, 빈곤하지만 천혜의 자연환경에서 스트레스 없이 살아가는 저개발국이 수위를 차지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한국에 관한 한 평가는 크게 엇갈리지 않는다.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인 한국인에 대한 평가는 ‘행복’보다는 ‘불행’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난다. NEF의 행복지수에서 한국 순위는 102위. 영국 레스터대학의 행복도 조사에서는 178국 가운데 102위. 미국 미시간대학의 ‘세계 가치관 조사’에서 나타난 행복도 지수는 39개국 가운데 28위. 이 조사에서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보다도 오히려 낮아졌다. ◇‘성장’의 그늘=한국인의 행복을 저해하는 요소는 많다. 실업과 비정규직 양산 등 근본적인 일자리 불안, 고물가에 따른 생활수준 하락, 진보-보수 갈등으로 표출된 정치사회 불안과 리더십의 부재, 양극화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 치열한 경쟁에 대한 부담 등이 모두 그렇다. 송 교수는 “서구사회를 쫓아 고속성장을 이루는 과정에서 베푸는 문화보다는 빼앗는 문화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보수와 진보세력의 대립이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보다 서로의 결점만 들춰내는 양상을 보이면서 국민들의 마음이 피폐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의 심리적 불만감은 60년간의 초고속성장에 따른 부작용이라는 지적도 있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경제성장이 곧 행복으로 이어지지만 국민소득 2만달러 수준 이후부터는 성장과 행복의 연결고리가 급격히 약화된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조승헌 행복경제연구소장은 “특히 한국은 경제성장ㆍ사회보장제도ㆍ기대수명 등을 기준으로 한 삶의 질이 세계에서 비교적 높은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행복은 중하위권에 머무는 보기 드문 사례”라며 “행복도를 높이기 위해 앞으로도 경제성장은 필요한 요소이지만 그에 더해 국민의 상대적 박탈감을 치유하고 마음을 헤아리는 ‘감성정책’을 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국민행복시대 열릴까=지난 15일 이명박 대통령은 건국 60주년 경축사를 통해 “우리가 꿈꾸는 선진일류국가는 개인의 행복과 국가의 발전이 조화를 이루는 나라”라며 “국민성공시대를 넘어 국민행복시대를 열어가겠다”고 선언했다. 송 교수는 “대통령이 국민행복을 비전으로 제시한 것은 매우 긍정적으로 본다”며 “정치와 지도자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국가 비전을 제시하고 균형 잡힌 성장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세계 각국도 단순한 성장논리에서 벗어나 ‘국민행복’으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 올 초 프랑스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행복 경제’를 주창하며 국민행복을 반영한 GDP 개발에 나서기 시작했고, 영국과 캐나다 등 서구 각국에서 GDP를 대신해 국민들의 행복도를 측정할 수 있는 지수를 개발하고 있다. 국민 행복을 높이는 데 한 가지 정답을 찾기는 어렵다. 소득계층에 따라, 개인특성에 따라 행복의 기준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의 정책도 어느 한 방향으로 치중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조 소장은 “절대소득이 낮은 층에서는 돈이 행복으로 이어지는 정도가 상대적으로 높지만 이미 국민의 품격은 오직 돈에만 치중하는 천민자본주의 수준을 넘어선 상태”라며 “경제성장으로 이룬 부를 사회적으로 선순환시켜 돈이 제 값을 할 수 있는 사회정책을 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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