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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 이 판결] <13> 리니언시 소송

대법 "공정위 감면 불인정 처분땐 행정소송 제기할 수 있다"

담합 자진신고자 권리구제 길 열어

"과징금 부과·형사처벌 등 법률상 불안 해소돼야"

행정소송 대상 논란 마침표

유리 제조회사인 A사는 지난 2006년부터 2009년까지 건축용 판유리 제조회사인 B사와 4차례에 걸쳐 건축용 판유리 제품의 가격을 올리기로 합의하고 가격을 인상했다. A사와 B사의 담합행위를 파악한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들 기업의 담합행위를 밝히기 위해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이후 A사와 B사는 자진신고 감면제도(리니언시·leniency)를 통해 과징금을 면제받기 위해 공정위에 담합 행위를 인정하는 내용을 담은 감면신청서를 제출했다.

담합행위를 적발하기 위해 도입한 리니언시제도는 자진신고를 통해 1순위 지위를 인정받으면 과징금 전액 면제와 형사고발 면제의 혜택을, 2순위 지위를 인정받으면 과징금 반액 면제와 형사고발 면제의 혜택을 각각 받게 된다.

당시 공정위는 B사의 감면신청만을 받아들였고 이에 불복한 A사는 공정위의 감면 불인정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공정위의 감면 불인정 처분은 행정소송 대상이 아니라며 사건을 각하했다.

재판부는 "공정위의 감면 불인정 처분은 공정위 사무처장이 공정위의 종국적인 처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행한 중간적·잠정적·가변적인 것으로서 그 자체가 원고에게 어떠한 권리나 의무를 설정하거나 법률상 이익에 직접적인 변동을 초래한다고 볼 수 없다"며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으로서의 요건을 갖췄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원고는 공정위의 전원회의 또는 소회의에 참석해 이 사건 통지에 관한 의견을 진술하거나 증거조사를 신청하는 등의 방법으로 다툴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학계 등에서는 공정위의 감면 불인정 처분이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는지를 놓고 이견이 팽팽했다. 그 동안 정부의 행정처분으로 인해 법률상 지위에 직접적인 법률적 변동을 일으키는 경우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었지만 공정위의 감면 불인정 처분이 행정소송 대상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판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먼저 행정 소송 대상이 된다고 보는 이들은 감면 불인정 통지를 받은 신청인은 시정조치와 과징금의 부과, 고발에 의한 형사처벌까지 당할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위험에 처하게 돼 법률상 지위에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공정위의 고발조치는 행정소송의 대상이 아니어서 다툴 방법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신청인으로서는 이미 범죄사실에 해당하는 부당한 공동행위 사실을 자백하고 관련 증거까지 제출한 이상 유죄판결을 선고받을 위험성이 높아지는 구체적인 불이익을 입게 된다고 봤다. 결국 감면 불인정을 받은 사업자가 처분으로 인해 장래에 받을 불이익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므로 취소소송을 통해 그 불이익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 행정소송 대상이 아니라고 보는 이들은 1심 재판부의 입장과 같았다. 공정위 전원회의의 심의·의결이 있기 전까지는 자진신고자 지위의 인정 여부, 과징금 부과 여부, 고발 여부 등에 대한 공정위의 확정적·최종적 의사가 결정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또 공정거래법에 따라 감면신청인은 공정위의 전원회의 또는 소회의에 참석해 감면 불인정 처분에 관한 의견을 진술하거나 증거조사를 신청하는 등의 방법으로 권리 구제를 받을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절차와 수단이 보장돼 있어 굳이 행정소송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공정위에서 사무처장의 감면 불인정 통지행위가 적절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도 전에 법원이 이를 취소소송으로 확정한다면 법원이 행정청의 역할을 하는 결과가 돼 부당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을 깨고 A사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감면 인정을 받는 경우 과징금의 감경 또는 면제, 형사고발 면제 등 법률상 이익을 누리게 되는 반면 감면 불인정 통지를 받는 경우에는 법률상 이익을 누릴 수 없게 된다"며 "통지가 이뤄진 단계에서 적법성을 다퉈 법적 불안을 해소한 다음 조사에 협조하도록 하는 것이 법치행정의 원리에도 부합한다"고 밝혔다.

부당한 담합을 자진 신고했음에도 공정위로부터 감면 불인정 처분을 받았다면 행정소송을 제기해 부당함을 주장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부당한 공동행위를 한 사업자가 자진신고자 등 지위확인을 받는 경우에는 시정조치와 과징금 감면, 형사고발 면제 등의 법률상 이익을 누리게 된다. 하지만 그 지위확인을 받지 못하고 감면 불인정 통지를 받는 경우에는 위와 같은 법률상 이익을 누릴 수 없게 된다는 점을 강조한 판결이다. 공정위의 감면 불인정 통보가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이라고 판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A사의 법률 대리를 맡았던 법무법인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감면 불인정 통보를 받은 신청인은 최종 과징금 부과와 시정명령 의결이 나온 뒤에야 해당 처분의 위법성을 다툴 수 있어 사업자의 권리구제 방안이 미흡했다"며 "이번 판결로 자진신고자의 새로운 권리구제 방법이 생겼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감면 불인정 통지가 이뤄진 단계에서 신청인에게 그 적법성을 다퉈 법적 불안을 해소한 다음 조사협조행위에 나아가도록 함으로써 장차 있을지도 모르는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 법치행정과 국민의 권리구제를 강조한 중요한 선례적 가치가 있는 판결"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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