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곳곳에서 성폭행 등 강력범죄가 잇따르자 정부가 도시공원 조성 시 범죄예방 계획 수립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일부 기준은 모호하고 어떤 부분은 범죄예방과 아무런 관련이 없을뿐더러 이행점검은 지자체에 일임돼 있는 탁상공론식 정책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도시공원의 조성 계획을 세울 때 범죄예방을 위한 선제적 조치로 ‘환경설계를 통한 범죄예방(CPTED) 기법’을 의무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내용의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개정안을 10일 입법예고했다.
CPTED 기법은 크게 ▦가시성 확보 ▦경고판 설치 등을 통한 접근통제 ▦표지판 설치 등을 통한 영역 구분 ▦미술관·박물관·조깅시설 등 활용성 증대 ▦유지관리 등 5개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지난 2009년 이후 서울 소재 도시 공원에서만 폭력·절도·강간 등의 강력범죄가 3,618건에 이르는 가운데 안전성 확보를 위해 마련한 조치라는 것이 국토부의 설명이다.
문제는 국토부 스스로 ‘범죄 예방 계획의 의무화’라는 표현을 써가며 엄격한 법적 잣대를 강조하고 나섰지만 실제 적용 기준은 지나치게 모호하다는 점이다.
폐쇄회로(CC)TV는 야간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조명과 함께 설치해야 하며 공원 안 대부분의 공간을 외부에서도 볼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 시행규칙 개정안의 핵심이지만 정작 주무부처인 국토부는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가시성 확보를 위해서는 나무 사이의 간격을 뜻하는 수밀도가 중요하다”면서도 “수밀도에 관한 명확한 기준을 수치로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국토부는 CPTED 기법에 따라 조깅시설·미술관·박물관 등의 운영으로 많은 시민들이 수시로 공원을 찾게 함으로써 범죄 발생을 사전에 방지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이 역시 의무사항은 아니다.
더구나 내구성이 강한 쓰레기통 사용 등의 내용이 담긴 유지 관리 분야처럼 범죄예방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부분도 있다.
윤영오 생활안전연합 공동대표(서울시립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범죄예방을 위한 도시 공원 설계의 의무화 자체가 지극히 관료적인 발상이기 때문에 세부 기준이 모호해지는 것은 당연하다”며 “관이나 지자체가 나서기보다 CPTED 기법에 관한 전문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민간 주도의 인증제도 도입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고 비판했다.
◇2009년 이후 서울 소재 공원 내 7대 범죄 발생 건수
폭력 2,565
절도 777
강간 173
강도 41
마약 23
방화 22
살인 17
합계 3,618
※자료: 경찰청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