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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투자 활성화를 위해 지주회사의 증손회사 설립에 대한 지분규제 완화를 약속한 정부의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 다짐이 지켜지지 않으면서 관련 기업들의 고충이 커지고 있다.
한 지주회사 관계자는 "투자는 타이밍인데 자칫 시간이 더 지연되면 어렵게 성사시킨 투자 자체가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면서 "지주회사의 증손회사에 대한 저주가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업계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고 전했다.
경제단체의 한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투자활성화를 천명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규제완화의 속도가 더뎌 투자를 가로막고 있다"며 "이렇게 시간만 보내다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일반지주회사가 증손회사를 둘 때 손자회사가 증손회사 주식 100%를 보유하도록 한 현행 공정거래법 규정이 9월 국회에서도 통과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정부는 기업들의 투자유치를 위해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자회사(증손회사)를 만들 때 지분 100%를 소유하도록 한 규정을 외국 기업과 합작할 경우에 한해 50%로 완화하기로 했다. 또한 국내기업과 합작을 통한 증손회사 설립 때도 100% 지분규정을 대폭 낮추기로 약속했었다.
이에 따라 지난 5월 관련 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으나 논란만 계속된 채 6월 국회 처리가 무산됐고 여야가 정기국회 의사일정 합의에 차질을 빚고 있어 이달 국회 통과도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지주회사가 증손회사를 두는 데 제한 조건을 둔 것은 대기업집단이 무분별하게 세력을 확장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지만 오히려 관련 규제가 기업 투자의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손자회사의 경우 외자유치, 벤처투자 활성화 등에 필수적인 다양한 형태의 제휴나 지분투자, 합작투자를 위해 증손회사의 주식 100%를 보유해야 하는 전제조건을 충족하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손자회사가 증손회사 주식을 모두 갖기 힘들 경우에는 지주회사가 증손회사와의 관계를 끊기 위해 보유한 지분을 전량 팔아 관계를 끊어도 되지만 이것 역시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라도 관련 규정이 하루 빨리 개정돼야 하지만 국회는 기업들의 이런 속사정은 모른 채 경제민주화만을 외치고 있을 뿐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건의문을 통해 "규제에 묶여 있는 합작투자는 석유화학 관련 설비투자로 생산품의 아시아 지역 수요가 급증해 증설이 시급한 실정"이라며 "투자시기를 놓치면 중국 등에 사업기회를 빼앗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법 개정이 지연되면서 울산과 여수 지역에 SK와 GS그룹이 외국기업과 합작한 2조3,000억원 규모의 석유화학 설비투자는 현재 차질을 빚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이 지주회사의 손자회사라는 이유다.
쇼와셸ㆍ타이요오일과 지난해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GS칼텍스는 각각 5,000억원씩 총 1조원을 투자해 여수에 연산 100만톤 파라자일렌 공장설립을 추진했다. 당초 예정대로면 내년 말쯤 공장이 완공돼야 하지만 아직 투자 집행조차 못하고 있다. SK그룹도 여수와 울산에 외국자본과 공동으로 투자해 공장을 짓기로 했으나 국회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두산그룹은 두산건설이 지분 43%를 보유한 증손회사 네오트랜스와의 관계를 1년 내에 정리하지 못하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지주사 규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될 상황에 놓였다.
비슷한 상황인 SK그룹은 공정위에 구원의 손길을 뻗쳤다. SK플래닛이 최근 공정위에 SK커뮤니케이션즈(컴즈)의 주식 처리를 2년간 유예해줄 것을 요청한 것이다. SK플래닛은 지주회사 요건 충족을 위해 이달 말까지 SK컴즈의 주식 100%를 확보하거나 보유 지분 전체를 매각해야 하는데 공개매수는 시간이 촉박하고 지분매각은 실적이 좋지 않아 현 시점에는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일부에서는 법 개정이 되면 대기업들만 수혜를 본다며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된다고 하지만 효율성이 떨어진다. 재계 관계자는 "오히려 외국자본의 투자가 늘어나고 지역경제가 활성화되며 일자리도 그만큼 창출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설비투자 증가율은 1970년대 20%를 넘었지만 1990년대 들어 9.1%로 반토막이 났고 2000년대에는 3.4%에 그치고 있다. 외국인 직접 투자 유치액도 지난해 3.3% 감소한 99억달러에 불과해 330억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해외 투자액과 비교된다. 법 개정으로 다시금 국내 및 외국기업의 투자에 불을 지피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현재 진행 중인 외국기업과의 합작투자 규모는 전남 지역 연간 설비투자의 17%, 울산 지역 연간 설비투자의 20%를 차지하고 직접고용창출 효과 1,100명, 간접고용창출 효과 3만여명에 달한다. 지역 내 생산 및 부가가치 증대, 지방정부의 세수확대 효과 등도 기대할 수 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입법이 지연되고 있는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이 조속하게 국회를 통과하길 바란다"며 "지주회사 중에는 중견·중소 지주회사도 많은 만큼 규제가 완화되면 앞으로 중견·중소 지주회사 육성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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