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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누구를 위한 은행 대형화인가

금융위기 이후 과점체제 굳어져<br>예대마진과 수수료장사에만 안주<br>덩치만 커지고 서비스경쟁 외면<br>해외진출 확대로 진검승부 걸어


지난 1815년 나폴레옹과 연합군이 맞붙은 워털루 전투 당시 유럽의 명문 은행가 로스차일드는 통신원을 통해 연합군이 승기를 잡았다는 소식을 남보다 앞서 전해 들었다. 하지만 그는 나폴레옹이 이기는 것처럼 연막작전을 펼쳐 겁먹은 귀족들의 자산을 헐값에 거둬들였다. 다음날 웰링톤의 승전보가 전해지자 증시는 폭등세로 돌아섰고 로스차일드는 거꾸로 주식을 내다팔아 엄청난 부를 챙기게 됐다. 로스차일드는 이후에도 세계대전과 대공황, 오일쇼크 등에 개입하며 막대한 이익을 챙겨 위기 순간마다 덩치를 키우는 냉혹한 금융자본의 대명사로 명성을 굳히게 됐다.

요즘 월가에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타고 더욱 공고해진 투자은행들의 독과점 체제가 논란을 빚고 있다. 베어스턴스, 리먼브라더스 등이 잇따라 무너지고 골드만삭스 같은 소수의 거대 투자은행만 살아남다 보니 시장지배력이 눈덩이처럼 커져 가격 담합행위까지 공공연히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들이 일종의 카르텔을 만들어 기업공개나 채권 인수과정에서 가격을 부풀리고 수수료를 조정한다는 비판마저 거세지고 있을 정도다.

사실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가 벌어진 것도 정부가 구제금융이라는 이름으로 살려놨더니 오히려 목소리만 커져 시장을 교란시키고 보너스 잔치만 벌이는 도덕적 해이에 대한 반발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오죽하면 골드만삭스가 고객 이익을 뒷전으로 한 채 회사의 수익만 챙기는 탐욕에 가득 찬 조직이라는 내부고발까지 터져나왔을까 싶다.

이 같은 사정은 국내 금융시장을 둘러봐도 별반 다를 게 없을 듯하다.

국내 은행산업은 외환위기 이후 금융통폐합 과정을 거쳐 숱한 은행이 사라진데다 정부의 대형화정책까지 맞물려 이미 5대 금융지주사 체제로 재편됐다. 5대 금융지주사들은 현재 대출시장의 71.4%, 예금시장 80.6%를 지배하고 있을 정도로 확고한 지위를 굳히고 있다. 은행 창구에서는 증권이나 보험상품에 이어 저축은행 상품까지 판매한다고 나설 정도니 사실상 원스톱 서비스체제를 굳힌 셈이다.

은행권의 과점체제가 굳어지다 보니 무엇보다 소비자를 위한 서비스경쟁이 예전 같지 않다는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은행들 입장에서는 무리하게 경쟁에 나설 필요성이 없어져 고객들을 상대로 예대마진이나 챙기고 수수료 수입이나 올리는 손쉬운 장사에 열을 올린다는 것이다. 은행들이 최근 예금금리가 떨어져 자금을 싸게 조달하면서도 대출금리를 올리는 것은 고객을 봉으로 보고 앉아서 이익을 챙기겠다는 속셈으로 보인다. 은행들이 제멋대로 가산금리나 우대금리를 적용하는 바람에 대출자만 고스란히 피해를 뒤집어쓰는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결국 지주회사체제가 은행들의 덩치를 불리는 수단으로만 이용됐을 뿐 소비자 입장에서는 별로 좋아진 게 없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국내 은행들은 삼성이나 LG 같은 제조업체와 달리 우물 안 개구리처럼 국내에서의 손쉬운 영업에만 안주해온 게 사실이다. 우리 은행들은 해외에 앞다퉈 진출한다고 하지만 대부분 국내 기업이나 주재원을 상대로 소매금융을 벌일 뿐 현지시장을 파고드는 사례를 좀처럼 찾기 힘들다.

정부가 중동특수를 살리겠다며 해외 프로젝트금융을 활성화하겠다고 나섰지만 현재 우리 은행의 글로벌 영업능력을 따져보면 한참 부족한 수준이다. 국내 기업들은 해외에서 대형 프로젝트 수주를 눈앞에 두고도 금융권의 지원이라는 한계에 부딪혀 이를 아깝게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반면 일본 경쟁업체들은 든든한 은행권의 후광을 등에 업고 해외시장에서 갈수록 힘을 쓰고 있다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국내 은행들도 이제 국내시장에서 땅 짚고 헤엄치기식 장사에 집착하지 말고 커진 덩치에 걸맞게 해외시장으로 눈길을 돌려 글로벌 금융사들과 진검승부를 걸어야 한다. 해외시장에서 먹히는 금융상품을 개발하고 신시장을 발굴하려는 경쟁에 뛰어들어야 한다.

미국은 앞으로 대마불사라는 금융시장의 인식을 없애겠다며 투자은행에 대한 규제조치를 담은 볼커법을 7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우리 금융당국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국내 은행에 대한 철저한 감독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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