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송년 모임에서 만난 30대 초반의 후배가 이렇게 말했다. "결혼하고 서울에 있는 아파트에 전세라도 살려면 적어도 2억원 가까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부모님 도움 받을 형편이 안되는 친구들은 집을 사는 건 고사하고 전세도 일찌감치 포기하는 거죠."
그 후배는 또 "여자친구가 '결혼하고 집은 어떻게 할 거냐'고 물을 때 가장 괴롭다"며 그때마다 "변변한 집 대신 괜찮은 차를 한대 사는 건 어떠냐"고 되묻는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후배와의 짧은 대화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어렵사리 취업에 성공해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세대의 심각한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
그나마 부모님 지원으로 학비 걱정 없이 대학을 졸업한다 해도 최악의 청년실업에 '바늘 구멍'같은 취업난이 그들을 숨막히게 한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사회인이 된 후에는 새 가정을 꾸려야 하는 문제를 풀어야 한다. 하지만 이 문제는 목돈이 없으면 '제대로'해결할 수 없다. 대부분이 은행 빚에 의존하지만 그렇다고 전액을 대출 받기는 힘들다. 이자 부담 역시 두려운 존재다.
올해 불황의 그늘은 깊고 길었다. 그 중에서도 부동산시장 경기는 참담한 수준으로 추락했다. 집값은 곤두박질치면서 거래는 뚝 끊겼다. 집값이 떨어졌다고 서민들의 주거가 용이해 진 것은 아니었다. 전셋값은 꾸준히 오르면서 그나마 만만하게 생각했던 전세살이는 더 어려워졌다. 서울 지역 30평대 아파트 전셋값이 2억5,000만원쯤 돼, 월평균 425만원을 받는 도시 근로자 가구가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5년 동안 모아야 전셋값을 마련할 수 있다는 부동산정보업체의 최근 자료는 씁쓸하기까지 하다.
송년회에서 만난 후배의 이야기와 시장의 현실이 겹쳐지면서 가끔 지나는 다세대 주택 좁은 골목에 세워진 고급 수입차들의 정체가 '정신 못 차린 젊은 놈의 허세'가 아닌 '체념한 젊은 가장의 우울한 보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 해가 저물고 오는 2013년 계사년 새해가 시작된다. 인수위원회를 꾸리고 있는 새로운 정부의 일성은 '민생'이다. 온통 어두운 전망뿐이지만 새 정부가 강조해온 약속이 잘 지켜지기를, 그래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각각의 바람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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