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승부에 명국 없다’는 말이 있다. 큰 명예가 걸린 승부에는 바둑실력 이외의 요소가 작용한다. 그것을 예전에 민병산은 ‘기술이 아니 심술(心術)’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일찌감치 우위를 확보한 장쉬는 이제 조심스럽게 셔터를 내리기만 하면 되는 입장이다. 한편 위빈은 셔터를 내리려는 상대방의 발목을 어떻게 해서든지 비틀어야 하는 절박한 입장이다. 앞서 있는 장쉬로서는 필사적으로 붙잡고 늘어지는 상대가 조금쯤은 짜증스럽다. 이 심중의 짜증은 사람을 조급하게 한다. 확실하게 상대를 무력화시키고 멋지게 승리를 선포하고 싶어진다. 조급증에 약간의 허영심이 가미되는 것이다. 이때가 셔터내리기의 위기에 해당한다. 장쉬가 그 심술의 덫에 걸렸다. 신혼의 부인 이즈미가 검토실에서 기다리고 있다. 수십 명의 기자들도 숨을 죽이고 기다리는 중이다. 이제 한두 시간 후면 생애 최초로 세계 챔피언이 되는 것이다. 수전노 스크루지처럼 발발 떨면서 셔터를 내릴 수는 없다는 자존심이 장쉬를 흔들었다. 심술의 덫이 그의 평정심을 마구 흔들었다. 위빈의 흑23은 최선이었다. 참고도1의 흑1로 젖히면 백2 이하 14로 패배가 굳어진다. 장쉬의 백26이 공연한 객기였다. 백가 흑나를 교환하고 얼른 30의 자리에 잡았으면 그것으로 백승이었다. 백34 역시 공연한 만용. 참고도2의 백1 이하 5였으면 간단히 백승이었다. 실전은 뭐가 뭔지 모르는 어수선한 바둑이 되었다. (48…43) 노승일ㆍ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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