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각자 남모르는 애환을 가지고 산다. 그 애환의 깊이는 아마도 살아온 시간에 비례하지 않을까 싶다. 애(哀)와 환(歡)의 감정은 반대의 극(極)을 향해 움직이는 쌍곡선의 궤적 같지만 한 켠의 뭉클함과 또 한 켠의 아리함이 합체돼 공존한다.
나라를 다스리는 경국(經國)의 양대 축은 국방과 재정이다. 국방은 영토주권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방편이고 재정은 국가 살림살이를 도모하는 본질적인 방편이다. 재정이 본질적인 이유는 재정이 불안하면 국방이 흔들리고 국가 주권이 위협받기 때문이다. 온천년 신라, 반천년 조선이 군사적 침략이 아닌 재정 혼란으로 망해 갔다는 역사적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재정은 세입ㆍ세출의 적정 관리 즉 '세금을 올바로 거둬서 올바로 쓰는 것'이다. 재(財)는 재물(돈)이요, 정(政)은 정(正)으로 올바름이다. 돈이란 모름지기 있어야 쓰는 법이니 세입은 세출에 선행하며 재정의 기초다. 국세청과 관세청 소속 2만6천여 세무공무원이 세입을 책임진다. 필자는 일선 세무서 과장을 시작으로 세제실(장), 조세심판원(장)을 거쳐 관세청(장)에 이르기까지 세무공무원으로서 세정의 외길을 걸어왔다.
재경부 사무관 때 '금융실명제'를 도입해 금융거래 정상화의 초석을 놓았다. 어언 이십년 전 일이다. 과장 때 도입한 '현금영수증제'는 세원의 투명성과 공평성 실현의 바탕이 됐다. 국장 때 도입한 '근로장려세제(EITC)'는 저소득 근로자의 근로의욕 고취와 실질소득 보장에 기여했다. 새 정부가 추진하는 '지하경제 양성화'와 '맞춤형 고용복지'와도 대강의 맥을 같이 한다는 생각이 미칠 땐 자못 뿌듯하다.
아픔도 있었다. 한여름 더위를 못 견뎌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속옷 바람으로 버티며 모기와 싸우고 한겨울 새벽 퇴근길에 살을 에는 삭풍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동료가 과로로 쓰러지는 모습을 한스러이 지켜보기도 했다. 애민, 역지사지, 공평과 합리의 염자철학(斂者哲學)과 생산지원으로 경제가 부흥해야 세원(稅源)이 늘어난다는 염자소신(斂者所信)으로 살았지만 간혹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거두는 염자로서 나의 행보가 폄훼될 땐 망연자실 억장이 무너지기도 했다.
올해 국세 세입 목표는 210조4,000억원이고 이 중 관세청 몫은 66조5,000억원으로 전체의 3분의1이다. 지하경제 양성화로 세입 목표를 무리 없이 달성해야 재정을 지원할 수 있다. 세입기관의 수장으로서 마음부터 바쁘다.
돌이켜보면 나의 운명은 세정행로자다. 내 몸에 배인 세무공무원으로서의 애와 환은 더 이상 쌍곡선의 궤적이 아니다. 애와 환이 뒤범벅된 일로(一路), 세정행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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