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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GRADE 한국의 노사문화] 3-3.생산적인 사회안전망 구축을

외환위기가 닥쳤던 지난 97년 말. 당시 구제금융의 전제 조건으로 `구조조정`이라는 험로를 강요하기 위해 방한했던 깡드쉬 IMF 총재. 그는 한국의 부실한 사회안전망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표현을 연발했다. 남미의 사례에서 보듯 곧 대량 실업이 닥칠 수밖에 없는데 대책은 전무하더라는 것.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사회안전망은 동전의 양면이다. 어느 하나라도 작동하지 않으면 노동 개혁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원덕 한국노동연구원장은 “사회적인 인프라 투자가 병행되지 않는 한 노사 갈등은 극단적인 형태를 띨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즉 일선 기업이 경쟁력 향상을 위해 해고 등에 나서더라도 정부가 이들 실업자들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사회안전망은 이미 선진국 수준= DJ 정부가 국정 3대 지표로 `생산적 복지`를 강조하면서 한국도 사회안전망의 형식적인 틀은 상당 부문 갖춰진 상태다. 우선 국민연금ㆍ의료보험 등 4대 보험이 완비됐다. 또 국민기초생활보장제 등 공적부조도 실시, 빈곤계층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고용보험제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수는 지난 98년 430만명에서 지난해 717만명으로 늘어났다. 실업급여의 혜택을 받는 근로자도 지난 97년 4만8,677여명에서 지난해 36만2,895명으로, 총 지급액은 787억원에서 8,393억원으로 증가했다. 산재보험 지급액도 같은 기간 1조5,560억원에서 2조원을 넘어섰다. 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통해 정부에서 생계비를 지급받는 빈곤층은 99년 54만명에서 지난해 135만여명로 늘어났다. 관련 예산도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을 합칠 경우 4조3,600억원에 달한다. 오히려 경제 전문가들이 국내 경제수준에 비춰 “과도하다”고 우려할 정도다. 복지 제도를 현행대로 유지할 경우 오는 2030년에는 국내총생산(GDP)의 20.6%를 복지비로 쏟아붓는다는 게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예상이다. 나성민 한양대 교수는 “노동계의 시각과 달리 현재 사회안전망은 국내 경제 수준으로 보면 결코 낮은 게 아니다”며 “지금처럼 사회복지 비용 증가세가 이어지면 우리 경제가 버텨내기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돈보다는 일자리 제공을”= 하지만 노동자는 물론 일반 국민들도 국내 사회보장제도에 대해 불신하고 있다. 선진국이 수십년에 걸쳐 정착시킨 제도를 무리하게 추진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문제점이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자영업자의 소득 파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국민연금 지역 가입 대상의 절반이 보험료를 내지 않는 것. 이는 수혜를 받아야 할 소외 계층의 몫이 엉뚱한 데로 흘러가고 있다는 얘기다. 강순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조정실장은 “선진국처럼 복지병을 말하기엔 아직 이른 감이 있지만 이제는 갖춰진 사회안전망을 중층적이고 촘촘하게 만드는 등 내실화에 더 주력할 때”라며 “부당 수급을 받는 사람을 줄이는 등 전달체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회보험의 `저부담-고급여` 구조도 문제다. 국민연금의 경우 40년 동안 가입할 경우 미국ㆍ영국은 평생 소득의 41ㆍ40%를 보장해주지만 우리는 60%에 달한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이 2033년에 적자가 발생하고 2048년에는 재정이 바닥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료보험 등 다른 사회보험도 재정이 거의 고갈된 상태다. 특히 `생산적 복지`라는 국정 지표가 실제 정책에는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즉 일자리 창출이나 전직 알선 등 `적극적인 사회 안전망`보다는 생활비 보조 등 시혜 차원의 소극적인 안전망의 비중이 높은 것. 나성민 교수는 “DJ 정부가 생산적 복지라는 개념을 도입, 사회복지의 틀을 선진국형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옳았다”면서도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실시된 공공근로 사업에서 보듯 실업자나 빈곤층의 자립 능력을 키우는 데는 효과가 미진했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난 2000년 10월 의욕적으로 도입한 기초생활보장제도도 근로 의욕을 오히려 꺾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박성준 한국경제연구원 박사는 “현금 지급액(4인 가족 기준 72만여원)이 국민연금이나 실업수당보다 더 높아 일자리를 구하지 않으려는 도덕적 해이에 빠질 수가 있다”고 말했다. ◇사회학습망 구축을= 글로벌 경쟁 및 기술 발전의 가속화에 따라 기업들의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는 대세다. 이에 대해 강 실장은 “지식기반 경제에서는 고지식ㆍ고숙련을 요구하는 수요는 증가하지만 단순 업무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이에 맞춰 고용안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회학습망(social Learning Net) 구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즉 영국의 `국가학습망(NGfL)` 처럼 사회안전망에 교육 개념을 도입, 일자리 창출과 결합할 수 있는 복지체계를 구축하자는 것. 이를 위해 ▲실업자의 재교육 지원 ▲저소득층 자녀를 위한 교육비 지원 ▲직업교육에 대한 산ㆍ학ㆍ관의 협력체제 강화 ▲전문직업 상담사 양성 ▲근로자의 능력개발을 위한 유급학습휴가제도 ▲교육훈련비의 노ㆍ사ㆍ정 분담 ▲국가자격제도 운영 때 노사 참여 보장 등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선진국 복지정책 `일하는 복지`로 선회 "고기낚는법 가르치자" 최근 영국ㆍ독일 등 선진국의 복지 정책은 단순히 생활비를 지급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실업자의 노동시장 복귀를 돕는 `일하는 복지(workfare)`로 돌아서고 있다. 근로자의 재훈련, 평생 직업교육 등을 강화하고 일을 구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줌으로써 근로 의욕을 키우자는 것. 한마디로 “일할 수 있는 사람에겐 일자리를, 일할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만 사회보장을 주자”는 게 기본 모토다. 강순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조정실장은 “전통적인 복지가 일이 터졌을 때 생선(돈)을 주는 사후적 복지라면 생산적인 복지는 고기 낚는 법(일자리)을 가르치는 예방적 복지”라고 설명했다. 전통적 복지는 지난 70년대만하더라도 복지국가로 대명사로 불렸던 영국이 바로 대표적인 경우다. 하지만 과다한 복지 재정이 국가 경쟁력 향상을 가로막는 사태가 벌어지자 `요람에서 무덤`이라는 말은 이제 옛구호가 되었다. 90년대말 집권한 블레어 총리가 `복지병`을 치료하기 위해 근로의욕을 감소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사회복지체제를 전면 개혁한 것. 우선 실업수당(UB)을 구직수당(JSA)으로 바꾸고 실업자가 직업을 구하면 보너스를 한꺼번에 주도록 했다. 특히 일 자리를 구할 경우에도 사회복지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는 복지 혜택을 받기 위해 일부러 실업 상태에 있어야 하는 다른 국가 제도들과 차별화한 것. 박성준 한국경제연구원 박사는 “국내에서도 근로 소득이 기초생활보장제의 기준보다 높으면 교육ㆍ의료 등의 다른 사회보험 혜택을 잃게 된다”며 “이 때문에 실업자들이 취업할 인센티브가 없어 결국 복지함정(welfare-trap)에 빠지는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또 지원 대상을 노령층, 저소득 근로자, 실업자, 청년층, 결손가정 등으로 세분화, 각각의 특성에 맞는 사회안전망을 제공했다. 그 결과 영국은 저소득 근로자에 대한 지출은 늘어나는 반면 근로 능력이 없는 사람에 대한 공공부조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즉 사회복지에 대한 의존을 줄이는 동시에 취업률을 높이는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 이는 독일도 마찬가지다. 독일은 장기실업자의 직업능력개발 등 고용안정 사업을 대폭 강화했으며 지방자치단체의 자율권을 강화, 필요에 따라 고용안정보험의 10% 정도를 자체 운영하도록 했다. 특히 노동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실업급의 지급요건을 강화하고 지급액을 대폭 줄였다. 또 고용보험의 재정악화를 막기 위해 노동창출사업에도 참가할 때 지급액을 기존 임금의 90%에서 80%로 대폭 줄였다. 랄프 데브코브스키 독일 경제노동성 전문위원은 “실업 정책은 일자리 창출과 노동자에 대한 교육, 기업 경쟁력 강화 등 3가지를 동시에 고려할 때 효과가 있다”며 “특히 독일은 국민연금ㆍ의료ㆍ고용 보험 등이 유기적인 협력 체계를 구축, 효율을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업대책 장기인프라 구축 주력해야 경제위기 이후 실업률이 급증함에 따라 국내 실업 예산도 크게 늘어났다. 그 결과 정부의 실업 예산은 지난 97년 GDP의 0.2%에서 98년 2.2%, 99년 3.2%로 껑충 뛰어올랐다. 특히 ▲공공근로 ▲인턴사원에 대한 급여 보조 ▲고용촉진기금 등 선진국보다 더 적극적인 노동 정책으로 일자리 창출에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후 실업자가 줄면서 2000년 1.2%, 2001년 0.6%, 2002년 0.5%로 낮아지긴 했으나 일본(0.52%ㆍ97년 기준)ㆍ미국(0.43%) 등 선진국에 비해서도 결코 낮은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취업알선이나 청년층 대책, 장애자 고용, 직업상담 등 장기적인 직업 안전망을 구축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게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가령 실업급여 지급, 실직자 중고생 자녀 학비지원 등을 뺄 경우 적극적인 부문의 실업대책 예산 중 단기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고용 보조금 부문에 60~70%가 집중돼 있는 상태다. 정인수 한국노동연구원 박사는 “응급 처방이 중심이었던 이전의 실업 대책과 달리 앞으로는 취업알선 및 직업훈련, 고용안정센터 강화 등 노동시장의 장기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며 “특히 지역별 실정에 맞게 실업 대책이 이뤄지도록 중앙의 권한을 지자체로 대폭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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