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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박정희도 怒할 일감 몰아주기

사진 위 (김우찬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친인척 일감 몰아주기, 중소기업고유업종 진출 등으로 재벌들이 정치권으로부터 연일 비난을 받고 있다. 재계와 극우 성향의 학자들은 선거를 겨냥한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이라고 주장하지만 정치권의 비난 강도는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정부도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과세 방안을 검토 중이고 국회는 중소기업적합업종의 법제화를 논의하고 있다. 선거를 치러야 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정치인들이 인기영합주의에 빠질 수 있다. 특히 경제가 어려울수록 그렇다. 불만을 품은 국민을 달래야 하기 때문이다. 일감 몰아주기 등을 비판하는 시민단체의 목소리는 5년 이상 됐다. 하지만 과거에 이를 귀담아 듣는 정치인은 거의 없었다. 선거를 1년 앞두고 갑자기 돌변한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서 필자도 이들의 인기영합주의를 사실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기업 자산을 특정 가족에 집중 그렇다고 일감 몰아주기, 중소기업적합업종 진출 등을 규율해야 할 필요성이 반감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인기영합주의로부터 자유로운 권위주의 정부에서도 똑같은 처방을 내놓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업계에는 특정인 중심의 가족적 기업군이 형성되어 이른바 무슨 그룹이니 하며 무리하게 여러 종류의 기업을 산하에 거느리고 있는 사례조차 있습니다. 그 결과 일부에서는 기업을 일으키고 키워나감으로써 보람을 찾기보다는 오랜 인습과 타성에 젖어 기업 자산을 소수의 특정인과 그 가족의 손에 집중하려는 폐습이 남아 있으며 이와 같은 현실은 오히려 기업의 건실한 발전을 크게 저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채를 탕감해주는 8ㆍ3조치라는 초헌법적 특혜를 받고도 기업공개를 꺼리는 재벌기업들에 분노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지난 1974년 5월29일 내각에 보낸 특별지시 중 일부다. 국민총화를 가장 중요시했던 박 전 대통령은 당시 기업공개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었다. 8ㆍ3조치로 기업들이 국민에게 진 빚을 갚는 가장 좋은 방법이 기업공개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특별지시에서 박 전 대통령이 문제 삼은 폐습은 두 가지다. 하나는 기업의 자산을 가족 손에 집중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무리하게 여러 종류의 기업을 산하에 거느리는 것이다. 전자는 오늘날의 용어로 일감 몰아주기, 후자는 중소기업적합업종 진출로 확대 해석해볼 수 있다. 총수 아들이 개인적으로 소유하는 신생기업에 계열사들이 일감을 몰아줘 기업의 부를 총수 아들에게 이전시키는 일감 몰아주기를 박 전 대통령이 보았다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또 재벌들이 수출과 자주국방에 도움이 되는 중화학공업에 매진하지 않고 중소기업적합업종에 진출하는 것을 보았다면 어찌했을까. 분명 격노했을 것이고 또 다른 특별지시를 내렸을 것이다. 우리나라 역대 정부는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정글 자본주의로 퇴보하지 않도록 항상 신경 써왔다. 이를 우리나라 역대 헌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제헌헌법(1948) 제84조는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고 되어 있다. 제5차 개정헌법(1962) 제111조 제2항도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시키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범위 안에서 경제에 대한 규제와 조정을 한다"라고 돼 있다. 경제발전 위한 규제·조정 필요 현행 헌법인 제9차 개정헌법(1987) 제119조 제2항도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인기영합주의에 빠져 있더라도 재벌정책은 결코 인기영합주의 정책이 아님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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