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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사태 등으로 주식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개인투자자들은 위험 자산 쪽으로 자금을 이동시키고 있다. 이는 국내 경기둔화, 대외 변수, 주식가격 제한폭 확대 등으로 인해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뚜렷해질 것이라는 시장의 예상과는 크게 다른 양상이다.
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일 기준 투자자예탁금은 23조2,643억원으로 올 들어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격제한폭 확대 이후 규모가 꾸준히 줄었던 투자자예탁금은 지난달 25일을 기점으로 점점 늘기 시작했다. 주식 거래량도 늘고 있다. 국내 주식시장 하루 평균 거래액은 2,100선을 처음 올라섰던 4월 10조9,000억원을 고점으로 5월에는 9조8,000억원으로 줄었다. 하지만 지난달 10조1,000억원선으로 회복세를 보인 데 이어 지난 2일에는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서 올 들어 가장 많은 12조348억원어치의 주식이 거래됐다.
신용융자잔액도 지난달 말부터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가격제한폭 확대 이후 한때 7조3,000억원 대까지 감소했던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2일 기준 7조5,432억원으로 지난달 초 수준을 회복했다. 차인환 하나대투증권 연구위원은 "신용융자잔액은 10년 내 최대 수준인 7조7,000억원에 근접해 있다"며 "현재로서는 증시 대기 자금여력이 충분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금융투자상품 시장에서도 수익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가격제한폭 확대 이후 변동성이 커진 시장에서 인기를 끌 것으로 내다봤던 상장지수펀드(ETF)는 오히려 가격제한폭 확대 이전보다 거래가 줄어들었다. 특히 변동성 장세에서 큰 힘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했던 '로볼' 전략을 사용하는 '로볼 ETF'는 가격제한폭 확대를 기점으로 거래량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로볼 전략은 저변동성 종목에 분산투자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로우볼 ETF'는 가격제한폭 확대 이전 보름간 하루평균 거래량이 5만5,000주가량이었지만 가격제한폭이 확대된 후에는 3만2,000여주로 절반 가까이 줄었고 '교보악사파워고배당저변동성 ETF'도 같은 기간 1,287주에서 618주로 절반 이상 감소했다.
일반 액티브 펀드 역시 마찬가지다. 올초부터 줄기차게 자금이 빠져나갔던 주식형 펀드에는 최근 자금이 밀려들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주식형 펀드의 순자산총액은 2일 기준 49조4,836억원으로 지난달 15일(47조20억원)보다 2조4,000억원 이상 늘었다. 상대적으로 중위험 상품으로 분류되는 채권혼합형 펀드가 같은 기간 8,000억원 정도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3배 이상의 자금이 몰린 것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사실 변동성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던 지난달 말부터 주식형 펀드로 자금 유입이 주춤할 것으로 예상했다"며 "하지만 최근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도 주식형 펀드로 자금 유입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최근의 자금 흐름 양상을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하고 있다. 우선 초저금리 시대에 만족할 만한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상품이 많지 않기 때문에 개인투자자들이 증시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지난달 개인투자자들은 코스피시장에서 1조4,545억원어치의 주식을 쓸어담았다. 진성남 하이자산운용 마케팅전략팀 이사는 "결국 저금리 상황에서 만족할 만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투자처를 찾지 못한 투자자들의 자금 일부가 주식시장으로 흘러 들어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정부의 경기 부양에 따른 효과와 중소형주의 성장 가능성, 지난달 단기 조정을 받은 국내 증시의 반등 기대감이 그리스 디폴트와 중국 증시 불안 등 대외 변수보다 투자자들에게 더 설득력 있게 작용함으로써 자금을 주식시장과 위험자산으로 이동하게 만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석현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 투자전략팀 연구위원은 "아직 본격적으로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확신할 수준은 아니다"면서도 "대내외 변수에도 불구하고 일정 기간은 더 주식시장이 상승할 요소가 많다고 판단해 투자자들이 움직이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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