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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수산식품부의 업무보고는 모래알처럼 흩어진 개별 농가들을 시장에 공동 대응하는 조직으로 육성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생산자들을 대규모 유통조직으로 엮는 유통 혁신을 통해 ‘돈 버는 농ㆍ어업, 살맛 나는 농어촌’이라는 농정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농어촌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유통구조 개선을 유독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농민들은 원가도 안 되게 팔고 수요자는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사 먹어야 하는” 현실은 현재 농업이 1차 산업에 국한돼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우리 농업을 2ㆍ3차 산업으로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관료로서 농어민에게 어쩌면 군림을 했다고 볼 수 있다”면서 “여러분(공직자) 스스로 변해야 하고 농사짓는 사람의 심정으로 가야 한다. 농림부 시절의 발상으로는 안 된다”고 인식의 전환을 주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국제곡물가 상승과 함께 중요도가 더해가는 식량 안보 문제에 대한 대응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제기되는 등 지나치게 시장논리에 치우친 정책 방향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는 실정이다. ◇개별 농어가 대형화에서 농어촌 시스템 확충으로=이 대통령은 이날 모두발언에서 “과거 정부가 100조원 가까운 돈을 농촌에 썼지만 농민 입장에서는 과연 효과적으로 해준 것이 있었냐”며 “이제 농촌도 기업화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서울시장 시절 알았던 배추의 유통구조를 예를 들며 “공직자는 유통구조 개선이다 하면서 알기는 많이 알고 모르는 게 없으나 실천에 옮겨지지 않기에 농촌이 개선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농림수산식품부는 농ㆍ어업 유통 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농ㆍ어업이 ‘돈 되는 사업’이 되려면 생산자가 권한과 책임을 갖고 대형 유통사와의 교섭 능력을 갖추도록 조직화ㆍ규모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6,000여명의 감귤생산자조합원이 ‘썬키스트’라는 공동 상표로 전세계에서 마케팅을 펼친 결과 지난 2004년 현재 총 9억8,000만달러 규모의 매출실적을 올리는 것이 대표적인 벤치마킹 사례다. 농어촌 조직화를 위한 지도자와 핵심 인력 양성도 필수다. 이를 위해 농림수산식품부는 내년까지 임원급 100명을 선발, ‘농어업 CEO MBA’ 교육 기회를 제공해 시ㆍ군 유통회사와 품목대표조직 등의 전문 경영인으로 육성하는 한편 30~40대 젊은 인력 유치를 위한 ‘뉴타운’ 조성에 나서기로 했다. ◇‘식품산업’ 육성이 성장동력=농어촌 규모화의 전제가 되는 것은 식품산업 육성을 통한 시너지 효과다. 정부는 6,300억원가량을 들여 국가 식품 연구개발(R&D) 허브로서 ‘국가식품 클러스터’를 전북에 조성하는 데 이어 중장기적으로 1시ㆍ군 1특산식품 클러스터 140개를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또 발효식품ㆍ기능성ㆍ친환경ㆍ생명공학 등 핵심 식품기술에 R&D 예산투자 규모를 내년 200억원에서 2012년에는 400억까지 늘리는 한편 농업 관련 펀드 투자 대상을 식품기업으로 확대해 관련 사업 R&D에 대한 민간자본 유입을 촉진시키기로 했다. 아울러 국제곡물 가격 상승에 대응해 쌀 가공식품 개발에도 적극 나서기로 했다. 정부는 현재 연간 22만톤 정도 유입되는 가공용 의무수입(MMA) 쌀을 쌀국수ㆍ라면 등 면류 가공식품용으로 시범 공급하고 가공업체 시설 개선도 지원하기로 했다. ◇농지 규제 완화…식량 안보대책은 미흡 지적도=규제 완화도 빠르게 진전될 예정이다. 농림수산식품부는 내년까지 총 84건의 규제를 완화하고 특히 경제 살리기 차원에서 농ㆍ산지 규제를 적극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농사짓는 땅으로는 부적합한 한계농지의 소유와 거래 제한을 없애기로 하는 등 기획재정부 업무보고에 제시됐던 규제 완화 내용이 대부분 포함됐다. 하지만 규제 완화로 농지면적이 줄어들 여지가 커진 한편 참여정부부터 논란이 됐던 새만금 개발 문제가 이번 업무계획에서는 아예 배제되는 등 식량 안보 차원의 자급률 제고 방안이 미흡하다는 지적은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국제곡물 가격 상승에 대해서도 실질적인 가격 안정 효과가 미흡한 할당관세 무관세 적용이 유일한 가시적인 대책일 뿐 밀 재배면적 확대와 해외농업자원 개발이라는 막연한 방침만 제시됐을 뿐이다. 이 밖에 농어촌 유통조직 설립계획에 있어서도 농협 등 기존 조직과의 역할 분담이나 신규 설립 기준이 모호한 실정이어서 추진 과정에서 적잖은 혼선이 빚어질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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