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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유비쿼터스의 그늘

정문재 <정보산업부장>

언어는 시대변화를 담는 그릇이다.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거나 삶의 양식이 변하면 새로운 단어가 탄생한다. ‘정보기술(IT)’이 대표적인 예다. 요즘은 아예 ‘IT’라는 단어를 마치 우리말이라도 되는 양 무차별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유비쿼터스(ubiquitous)’라는 말이 일반화됐다. 유비쿼터스란 언제 어디서라도 온갖 형태의 단말기를 통해 인터넷에 접속해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환경을 일컫는다. 그래서 대다수 사람들은 이 말을 IT 용어로 여긴다. 하지만 유비쿼터스의 원래 의미는 신성(神性)을 담고 있다. 라틴어로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는 뜻이다. ‘신(神)이 곧 우주’라는 범신론(汎神論)적 개념이다. 결국 유비쿼터스 환경에 힘입어 인간은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신의 영역으로 발을 들여놓은 셈이다. 신(神)과 같은 유비쿼터스 그래서 유비쿼터스에 대한 평가는 ‘찬양’ 일변도다. 하긴 가족과 외식을 하면서 귀가하기 전에 냉난방 온도를 미리 맞춰놓고, 해외에서 휴가를 즐기면서 언제라도 주식매매 주문을 낼 수 있으니 찬양의 대상이 되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현상이 그렇듯 유비쿼터스 또한 그 나름의 이점과 문제점을 동시에 안고 있다. 개개인이 언제 어디서나 누구와도 접촉할 수 있다면 그만큼 사생활도 제약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지난 80년대 후반 사회생활을 한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삐삐’ 때문에 한 두 번 정도는 당혹스러운 경험을 했을 것이다. 목욕탕에 들어가자마자 삐삐가 울리는 바람에 몸에 물 한 방울 묻히지 못한 채 다시 나와야 했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지금의 정보통신 기술은 과거의 삐삐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발전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사생활을 제약하는 정도가 아니라 얼마든지 침해할 수도 있다. 언제 어디에서 누구와도 접촉할 수 있다는 것은 개개인이 항상 감시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의 IT 기술로는 영화에서처럼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마치 운동경기를 시청하듯 감시할 수 있다. 이동통신 서비스 ‘친구 찾기’를 통해 노조 간부를 감시했다는 의혹을 산 대기업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래서 선 마이크로시스템즈의 최고경영자(CEO) 스콧 맥닐리는 “이제 사생활이란 아예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 적응하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고 말할 정도다. 유비쿼터스의 빛과 그림자 유비쿼터스의 그늘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에는 통신서비스업체 등을 통한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수시로 발생하고 있다. 통신업체 등이 보유한 막대한 양의 개인 신상정보 데이터베이스(DB)를 입수해 마케팅에 활용하려는 수요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가입자 개인정보 임대사업을 아예 신규 수익사업으로 추진하는 통신서비스업체까지 등장했다. 개인정보 유출은 단지 사생활 침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왕왕 엄청난 범죄로 이어진다. 인터넷 포르노 사업 운영자인 케네스 테브스는 97년 캘리포니아 차터 퍼시픽은행으로부터 400만개의 고객 신용카드 번호를 사들였다. 은행은 테브스가 인터넷 결제사기를 방지하기 위해 신용카드 번호를 구입한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테브스는 80만명분의 번호를 포르노 사이트에 등록한 것처럼 꾸민 후 고객 1명당 19달러95센트를 결제하도록 했다. 테브스가 이 같은 카드사기로 빼돌린 돈은 무려 4,900만달러에 달했다. 인간이 만든 신(神)은 통제돼야 유비쿼터스 환경은 가히 신(神)과 같은 위력을 갖고 있다. 신은 쓰나미 같은 재앙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고른 강우 및 일조량을 통해 쾌적한 삶을 보장하기도 한다. 유비쿼터스 환경도 마찬가지다. 다행히 신(神)과는 달리 유비쿼터스 환경은 인간이 제어할 수 있다. 유비쿼터스를 통해 행복한 신세계를 만들려면 적절한 통제가 필요하다. 기술로 이런 통제를 실현할 수 없다면 법적 규제를 병행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유비쿼터스 시대는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등장하는 세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서 인간의 행복지수도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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