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의 단편소설 중 '줄자'라는 작품은 한 소시민이 결혼 후 열심히 저축해서 서울 변두리 택지에 꿈에 그리던 집을 짓는 내용을 담고 있다. 주인공은 공사 내내 수시로 현장에 앉아 애달프게 지켜보다가, 집을 완성하고 드디어 이사한다. 그런데 어느 비 오는 일요일 아침 대문을 거칠게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보니, 이웃이 찾아와 뜻밖의 이야기를 한다. 그의 집이 법에 정해진 집 사이의 이격 거리를 어겼으며 처마도 대지 경계선을 넘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가 곧바로 협박이 되고 협박은 바로 고소라는 절차로 현실화된다. 주인공은 터무니없는 비용으로 해결하자는 이웃의 요구에 한없이 갈등한다.
건축 시 벽을 대지 경계선으로부터 50㎝를 무조건 띄어야 한다는 규정은 실제로 존재한다. 그런데 그 근거는 건축법·도시계획법 등 관계 법령이나 지방자치단체의 조례 등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민법 제242조, 경계선 부근의 건축(건물을 축조함에는 특별한 관습이 없으면 경계로부터 반m 이상의 거리를 두어야 한다.)'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규정이 생긴 것은 예전에는 건물에 보통 처마가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소설에서처럼 집을 바짝 붙여 지어 남의 땅에 처마가 넘어가 다툼이 생기는 것을 막는다는 단순한 이유로 생긴 법인 것이다. 덕분에 강제적으로 건물과 건물 사이에 만들어진 1m의 틈은, 사람이 다닐 만한 통로도 아니고 나무도 심을 수 없는 쓸모없는 공지가 되었다. 보통 짐이나 쓰레기가 쌓여 있기 마련이니 지저분하기도 하고 아깝기도 하다. 물론 이웃한 두 필지 주인이 합의한다면 아예 벽을 붙여 짓는 맞벽 건축을 할 수도 있지만 쉽지는 않은 일이다.
이제 대부분의 건물에서 처마가 사라졌으니 이 조항은 개선되거나 없어졌어야 했다. 그런데 오히려 강화됐다. 개정된 건축법 제58조 '대지 안의 공지' 규정에 의하면 건물의 위치, 용도 및 규모 등에 따라 건축선 및 인접 대지 경계선으로부터 6m 이내의 범위에서 해당 지자체의 조례로 정하는 거리 이상을 띄워야 한다. 예를 들어 다세대주택을 짓는다면 서울시에서는 이웃 대지와 민법상 제한보다도 더 먼 1m를, 화성시는 심지어 2m 거리를 두어야 한다. 사방의 경계선에서 그 정도 거리를 띄다 보면 면적이 좁은 땅은 거의 건축이 불가능해지기도 한다.
왜 건축에서는 상위법이 하위법에 우선한다는 상식이 통하지 않게 된 것일까? 건축법보다 지자체 조례가 우선시되고, 신도시 등 블록 단위 개발 지역이나 역사문화지역 등에서는 '지구단위계획'이 거의 초법적인 제약이 된다. 그러다 보니 간혹 상위법에 저촉되더라도 당장은 해당 지자체의 해석을 따를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물론 건축이나 도시계획에는 지역적 특성이 가장 먼저 반영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작 헌법에 의해 보장되는 '모든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부분은 과연 없는지, 그것을 충분히 검증할 수 있는 자치단체장과 입법기관인 구·시의회의 능력과 역할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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