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회장님이 요즘 고민이 많으십니다.” SK그룹의 한 고위관계자는 최태원 회장의 현재 심경을 이같이 전했다. 그가 고민하는 주제는 그룹 체질을 ‘수출형’으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신사업 발굴. SK그룹은 현재 주력사업이 정체 조짐을 보이고 있어 새 돌파구를 모색할 시점이다. 에너지 사업의 경우 인도의 재계 1위 기업 릴라이언스가 고도화설비 신증설을 마치는 내년부터는 수출시장에서 올해와 같은 성과를 내기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이동통신도 국내 시장이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지 오래다. 그룹의 양대 업종인 에너지와 이동통신이 고물가 시대에 소비자들의 ‘가격저항’에 부딪힌 것도 큰 부담이다. SK그룹이 주목하는 새 성장동력은 ‘u시티’ 사업. 이와 함께 신재생에너지ㆍ환경(SK에너지), 컨버전스 사업(SK텔레콤), 비즈니스 모델 수출(SK네트웍스) 등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들의 성패가 오는 2011년까지 그룹 매출 100조원과 수출 비중 50%라는 SK의 중기 비전 달성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기존의 핵심 역량을 모아 신사업에 도전=현재 SK그룹의 신사업 가운데 성과가 가시화된 것은 u시티 프로젝트. SK텔레콤이 통신을, SK C&C가 시스템을 SK건설이 설계ㆍ시공, SK네트웍스가 통신망과 서비스 디자인을, SK에너지가 가스ㆍ석유 등 에너지 부문을 맡아 유비쿼터스 기반 최첨단 도시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SK는 지난 5월 2013년까지 무려 10억달러를 들여 중국 베이징에 국제디지털문화산업단지를 조성하기로 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고 지난해에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베트남에 u시티를 건설하는 내용의 MOU를 맺었다. SK에너지는 이와 함께 3대 신사업인 2차전지ㆍ수소스테이션ㆍ환경 분야에서도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SK에너지는 2003년부터 액화천연가스(LNG)를 통해 수소를 만드는 사업과 연료전지 사업에 대한 기술개발을 진행하고 있으며 2차전지의 경우 하이브리드 자동차용 제품기술을 최종적으로 가다듬고 있다. 환경 사업은 토양과 대기오염 정화 분야에서 벌써부터 일정 부분 성과를 내고 있다. SK에너지의 한 관계자는 “해외 유전개발도 신사업으로 볼 수 있다”면서 “현재까지 4,900억원을 투자해 16개국에 걸쳐 5억1,000만배럴의 지분 원유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를 확대해 2015년에는 10억배럴 수준까지 높이겠다”고 밝혔다. SK텔레콤은 글로벌 사업과 각종 컨버전스 사업으로 성장 정체를 넘는다는 전략을 세웠다. 해외사업의 경우 중국과 미국의 이동통신 서비스 회사 지분을 확보해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으며 베트남에서는 직접 서비스를 벌이고 있다. 또 4월 유선통신 사업자인 하나로텔레콤을 인수해 유무선 통합 서비스 기반을 확보하고 더 나아가 IPTV와 방통융합 시대를 대비하는 것도 SK텔레콤의 거대한 신사업 프로젝트 중 하나다. ◇중국을 제2의 내수시장으로=SK그룹은 한국에서 성공한 사업을 중국으로 가져가 똑같이 성공한다는 방침 아래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중국을 단순한 수출시장 또는 생산기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제2의 내수시장’으로 보는 독특한 전략. 중국을 제2의 안방으로 삼기 위해 ‘차이나 인사이더(China insider)’라는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특히 SK그룹은 중국 공략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경제규모와 사회의식 발전 속도를 볼 때 지금이야말로 한국에서 성공한 비즈니스를 중국에 펼치기에 딱 좋은 시기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 쪽에 가장 큰 공을 들이고 있는 계열사는 SK네트웍스다. 한국에서 성공한 이동통신 단말기 소매점 사업과 주유소 사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중국으로 가져가 사업을 전개하고 있고 자동차 경정비부터 중고차 매매까지 서비스를 확대한 ‘스피드메이트’의 경우도 조만간 중국에 사업모델을 가져갈 계획이다. SK에너지도 중국 최대 석유ㆍ화학회사인 시노펙과 손잡고 우한(武漢)에 대규모 나프타분해시설(NCC)을 건설하고 있다. ◇따로든 같이든 뭔가 해보자=SK는 이밖에도 추가적인 신사업을 발굴해내기 위해 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SK의 신성장동력 발굴 작업은 최 회장의 경영철학인 ‘따로 또 같이’ 전략에 따라 지주회사인 SK㈜와 각 계열사가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계열사별로 따로 신사업을 발굴하되 함께할 수 있는 부분은 힘을 모으자는 전략이다. 그룹 지주회사인 SK㈜는 주로 인수합병(M&A)을 통한 신사업 전개를 검토하고 있다. 실제로 이승훈 SK㈜ 사업개발담당 전무가 이끌고 있는 조직은 지난해부터 대한통운ㆍ대우조선해양 등 국내의 모든 M&A 물건을 검토했고 현재도 꾸준히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계열사들 또한 크고 작은 신사업을 각자 뜻에 따라 우선 밀고나간다는 방침이다. 이 과정에서 계열사 간 사업 중복이 발생할 경우에는 그룹 차원에서 교통정리에 나설 계획이다. SK그룹의 한 관계자는 “SK C&C 상장으로 그룹에 1조원대의 현금이 들어올 예정이었고 그 자금을 바탕으로 야심차게 전개할 사업군을 꼽아뒀었다”면서 “그러나 상장이 연기되면서 신사업 발표도 잠시 보류됐지만 머지않아 새로운 사업계획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생명과학에서 미래 찾겠다"
지주회사인 SK㈜가 직접 사업 인큐베이팅… "전문 제약기업 도약"
'생명과학에서 미래를 찾겠다.' SK그룹이 지난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뒤에도 지주회사인 SK㈜가 직접 잡고 진행하는 신사업이 있다. 바로 신약사업과 의약중간체 사업이다. 생명과학을 기반으로 한 두 사업은 막대한 연구개발(R&D) 비용이 들어가지만 한번 성공하면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분야. 이 때문에 지주회사가 직접 사업을 인큐베이팅하고 있다. SK가 차세대 성장축으로 생명과학을 육성하기로 한 것은 지난 1996년. 그동안 석유화학제품을 생산하며 쌓은 반응ㆍ촉매ㆍ분리ㆍ정제기술을 바탕으로 4년 만에 의약중간체를 생산하는 데 성공한 후 에이즈(AIDS) 치료제와 심혈관 치료제 등 40여종의 중간체를 생산하고 있다. 이들 중간체 제품의 90%가 화이자 등 세계 10대 제약회사에 판매되고 있으며 2000년 280만달러의 매출을 시작으로 2005년 1,980만달러, 2006년 2,310만달러에 이어 지난해에는 3,120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올해도 지난해 대비 10% 정도 성장할 것으로 SK는 전망하고 있다. SK㈜는 이 같은 의약중간체 성공에 힘입어 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최종의약품 생산에도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특히 SK㈜는 지난달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승인을 받아 임상시험에 들어간 신경병증성 통증 치료제 'SKL11197'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 약품은 SK㈜가 직접 개발해 FDA로부터 임상시험을 승인 받은 일곱번째 작품으로 현재 미국 현지 연구소인 'SK라이프사이언스'를 통해 임상시험과 제품화를 추진, 글로벌 신약으로 키울 방침이다. 회사 측은 "SKL11197은 신경병증성 통증뿐만 아니라 불안증ㆍ우울증 등 다양한 질환에 대한 효과가 있어 제품화에 성공할 경우 상당한 시장가치를 가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회사의 한 관계자는 "매년 1개 이상의 임상시험 승인 물질을 선보여 장차 탁월한 R&D 능력을 갖춘 전문 제약기업으로 도약하겠다"면서 "머지않은 시점에서 지주회사에서 분사해 독립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맹준호기자 ■ "신사업 발굴· 시장개척 두토끼 잡자"
최태원회장, 해외일정 강행군
"중국 시장에 들어가기만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중국과 손을 잡고 진출할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지난 5월 이명박 대통령 방중 수행 중)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올해 유례없이 바쁜 해외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신사업 발굴과 해외시장 개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최 회장의 절박한 필요에 따른 것이라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최 회장은 1월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포럼에 참석해 세계 경제의 흐름과 에너지ㆍ통신의 조류를 체험한 데 이어 4월에는 '아시아의 다보스 포럼'으로 불리는 중국 보아오포럼에도 참여해 세계적인 인사들과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다지고 다양한 산업 분야의 최신 트렌드를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최 회장은 특히 다보스포럼에서는 "선진국의 경제발전 모델과 산업기술을 산유국에 패키지로 제공하는 방안을 함께 연구해보자"고 제안해 산유국과 비산유국이 자원위기를 함께 넘기는 방안을 제시해 박수를 받았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도 동행해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특히 방중 기간 중 "중국을 잠식할 시장으로 보면 안 되고 함께 윈윈 할 수 있는 현지화 전략이 절실하다"고 말해 수행단의 공감을 얻었다. 방중 기간에는 최근 수년간 공들여왔던 중국 시노펙(SINOPEC)과의 합작 공장 설립건을 마무리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최 회장은 다양한 신사업을 통한 수출형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본사' '지사'와 같은 낡은 개념부터 털어버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글로벌 컴퍼니에서는 본사ㆍ현지 같은 개념은 없고 기능이 있는 조직은 모두 본사이고 현지'라는 것이다. 최 회장은 "글로벌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현재의 비즈니스 모델은 한계가 있으므로 실패의 책임을 묻기보다는 과감한 투자를 통한 도전의 가치를 인정해줘야 한다"며 신사업에 대한 도전을 촉구했다고 그룹 측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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