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불허전(名不虛傳). 2시간의 내내 네 글자를 무대 위에 새겨넣었다. 올해로 한국 초연 10주년을 맞은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사진)'의 프렌치 오리지널 내한 공연은 50여 곡의 애절한 노래와 감각적인 안무로 프랑스 뮤지컬의 매력을 아낌없이 쏟아냈다. 마치 '원조란 이런 것'이라고 말하는 듯.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1481년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배경으로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와 그녀를 사랑하는 세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추한 외모를 갖고 태어났지만 따뜻한 마음을 지닌 성당의 종지기 '콰지모도'와 에스메랄다와 약혼녀 사이에서 방황하는 근위대장 '페뷔스', 애욕에 사로잡힌 성당 주교 '프롤로'까지. 세 남자의 각기 다른 사랑과 갈등은 대사 없이 노래로(송스루) 전개된다.
귀에 감기는 넘버와 배우들의 우아한 음색은 오리지널 팀이 선사하는 최고의 선물이다. 에스메랄다를 향한 세 남자의 찬양과 절규가 섞인 '아름답다'는 이 작품의 백미다. 콰지모도-프롤로-페뷔스-삼중창으로 이어지며 가질 수 없는 존재로 인한 고통을 담아냈다. 특히 이번 공연은 9년 만에 선보이는 프렌치 버전으로 프랑스어 특유의 발음이 기존 한국어나 영어(내한) 공연에선 느낄 수 없던 색다른 분위기를 선사한다. 연음이 많은 언어 구조상 물 흐르듯 부드럽고 우아한 배우들의 음색이 서정적인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콰지모도 역의 맷로랑은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애절한 감성을 토해냈다. 그가 에스메랄다의 죽음 앞에 슬픔을 표현하는 '춤을 춰요 에스메랄다'는 맷 로랑이 왜 노트르담 드 파리의 상징적인 배우인지를 제대로 증명했다. 그는 지난 13년간 900번 이상 콰지모도 역으로 무대에 섰다.
감각적인 몸놀림은 단연 압권. 많은 프랑스 뮤지컬이 배우를 목(가수)과 몸(댄서)으로 분리하지만, 이 둘이 따로 놀아 낭패를 보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노트르담 드 파리는 캐릭터의 감정을 표현하는 주된 수단으로 몸을 적극 활용하며 드라마에 힘을 보탠다. 비보잉과 아크로바틱이 접목된 현대무용은 이야기 속에 적절히 녹아들어 독특한 에너지를 뿜어냈다. 페뷔스가 에스메랄다와 약혼녀 사이에서 고민하며 '괴로워'를 부를 땐 안무·조명·음악이 어우러져 감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샤막(반투명 가림막) 뒤에서 5명의 댄서가 고통의 몸짓을 아크로바틱으로 표현하는 동안 핀 조명은 이들을 번갈아 비추며 페뷔스의 자아를 극적으로 표현했다.
감동을 반감시키는 번역 자막은 '옥에 티'다. 좌석마다 설치된 스크린을 통해 한국어 가사 자막이 뜨지만, 감성의 전달보단 문장의 해석에 가깝다. 서정적인 원작의 감성을 비교적 잘 담아냈던 한국 공연 가사와 비교하면 성의가 떨어진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대사 없이 노래로만 진행되는 송스루인 데다 자막을 참고해야 하는 만큼 작품의 줄거리를 미리 파악하고 관람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2월 27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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