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하고 우리가 바로 그 누군가입니다." 고(故)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2003년 11월 WHO 대표단 세계회의에서 한 말이다. 그는 2005년까지 300만명에게 에이즈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행동(줄여서 '3 by 5')을 즉각 취해야 한다는 호소를 했다. 재정부족으로 애초의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그런 노력에 힘입어 2005년까지 100만명의 에이즈 환자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이종욱 전 사무총장의 '3 by 5'캠페인은 "공중 보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의 하나로 평가된다.
2003년 WHO 사무총장 자리에 올라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선출직 유엔 기구 수장이 된 '세계 보건대통령' 이종욱 박사의 일대기를 풀어쓴 평전이 나왔다. 이종욱 박사가 운명을 달리한지 7년만의 일이다. 그의 사무총장 시절 연설문을 작성했던 데스몬드 에버리가 쓴 것을 우리 말로 옮긴 것이다.
이종욱 박사는 WHO 사무총장이 된 후 1년에 30만㎞ 넘게 이동하며 지구촌 구석구석 가난하고 병든 이들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공중보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3 by 5'캠페인을 전개하고 신종 인플루엔자에 적극 대처하기 위해 국제보건규칙을 30년만에 개정했으며 대유행병 6단계 로드맵 등을 구축했다.
이 전 총장은 코피 아난의 뒤를 이을 유력한 차기 유엔 사무총장 후보로 거명됐지만 2006년 5월 세계보건총회 전날 갑자기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코피 아난 사무총장은 "세계는 오늘 위대한 인물을 잃었다"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이뤄져 있다. 그가 태어난 1945년부터 1979년 미국 하와이로 떠나기 전까지의 삶을 다룬 1부 '남들이 가지 않는 길', 1979년부터 2003년까지 하와이대학교와 남태평양 사모아섬, 그리고 WHO 태평양 지역사무처에서 근무하던 시절을 쓴 2부 '백신의 황제', 그리고 WHO 사무총장으로 선출된 2003년 1월부터 뇌혈전으로 세상을 떠난 2006년까지를 다룬 3부 '옳은 일을 하라, 옳은 방법으로'가 그것이다.
이종욱 박사가 WHO에 처음 몸담았을 때와 달리 지금은 각종 국제기구에서 활동하는 한국인들이 많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김용 세계은행 총재처럼 국제기구 수장이 된 한국인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그런 점에서 불모지와 같던 국제기구에서 한국이 최초의 선출직 수장이 된 이 전 총장의 삶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제기구라는 또 다른 세계로 진출하려는 젊은이들에게도 이 책은 큰 도움이 될 듯하다.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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