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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통해 세상읽기] 대도폐 유인의, 혜지출 유대위

성적지상주의 교육체계 잔혹한 '괴물' 만들어내

한쪽만 정답이라 강요 말고 자율적으로 삶 꾸리게 해야



학교가 심상치 않다. 신성한 배움의 도량이 흉흉한 이야기로 사람들의 마음을 깜짝 놀라게 만들고 있다. 최근 한 중학생이 자신이 다녔던 옛 학교 교실로 찾아가 부탄가스통에 불을 붙였다. 이 학생은 가스통에 불이 붙은 뒤에도 교실을 빠져나가지 않고 폭발 후 우왕좌왕하는 교실 분위기를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동영상을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에 올렸다. 아직 범행동기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불편했다' '혼내주고 싶었다'고 진술하는 것으로 봐 친구들과 감정을 제대로 풀지 못하거나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일어난 일로 보인다.

어른들은 도로에서 자신의 차를 앞질렀다고 화를 내며 상대의 차를 앞질러 갑자기 멈춰서는 보복 운전을 했다. 학생들은 자신에게 반감을 보였다고 주관적으로 느껴 다수의 급우를 위험에 빠뜨리는 폭발을 감행했다.

하지만 화가 난다거나 자존감에 상처를 입었다고 폭발을 감행하거나 보복을 한다면 우리는 잠재적인 적대자가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어디에도 안전과 안정이 보장되지 않은 고밀도 위험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휴전선을 맞대고 일촉즉발의 긴장 국면을 자아내는 남북 대립의 위험보다 불특정 다수를 향해 벌이는 보복과 폭발의 가능성이 결코 덜 위험하다고 할 수는 없다.

'노자'를 보면 "대도가 사라지면 인의 도덕이 강조되고 지혜가 나오면 속임수도 생겨난다(대도폐 유인의 혜지출 유대위·大道廢 有仁義 慧智出 有大僞)"고 한다. 역대 정권은 정의사회 구현, 선진화, 창조경제 등 국정 지표를 경쟁적으로 제시했다. 그 방향으로 나아가면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 새로운 사회를 열 것처럼 강조한다. 하지만 하나의 정책이 나오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을 포착해 역이용하는 사람도 생겨난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교육 정책이라며 내놓지만 그때마다 입시 시장은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 학부모의 부담을 늘린다. '노자'는 압축적인 표현이지만 현대사회에서 일어나는 병리 현상을 그대로 말하고 있다. 국가가 개인에게 부당하게 간섭하지 않고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자신의 삶을 다양하게 꾸려가도록 하면 문제가 덜 생긴다. 방향을 정해놓고 다른 방향을 막으면 지혜를 좋은 쪽으로 사용하는 일도 일어나지만 지식을 나쁜 쪽으로 역이용하는 일도 생겨나기 마련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자신의 인생을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국가와 어른들이 나서 오로지 우수한 성적과 좋은 대학 진학이라는 방향을 정해놓고 있다. 부모와 조부모 등 주위의 모든 사람이 팔을 걷어붙이고 아이를 이 방향으로 몰아가려고 난리법석을 피운다. 일부는 그 방향으로 따라갈지 모르지만 다른 일부는 그 방향을 피해 자신의 우월성을 보이려고 하게 된다. 다른 방향이 성적과 대학이 아니더라도 아이를 행복하게 하고 주위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 다른 방향이 주위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고 그로 인해 희열을 느끼는 것이라면 곳곳에서 영웅이 아니라 괴물이 태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괴물이 괴력을 뿜어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쩜 그럴 수 있을까" 하며 이해력에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 무서운 것이다. 앞으로 끔찍한 일이 일어나리라 예측하고 대비하려 해도 구체적으로 우리 주위에서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유비유환(有備有患)'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더욱더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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