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Culture&Life] 펑밍주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장

"정부가 반환 보장해준다면 소장유물 언제든 한국 전시 가능"

'하나의 중국' 내세우는 中 눈치에 … 공식 수교국 23곳 그쳐

■'국제사회의 고아' 대만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의 전시 유물 중 가장 관람객의 인기를 끄는 것은 육형석(肉形石·오른쪽)과 진조장(陳祖章·위), 취옥백채(翠玉白寀·왼쪽)이다. 모두 청나라 때 작품으로 육형석은 중국 돼지고기 요리인 동파육과 닮은 돌 조각품이고 진조장은 사람 손톱 크기의 과일 씨앗에 배를 조각한 것이다. 특히 취옥백채는 배추에 여치와 황충이 붙은 모양을 옥의 일종인 비취에 조각했다. 청 태조가 명나라 장인에게 작업을 지시하자 마지못해 숨은 뜻을 담아 만들었다고 한다. 아랫부분 하얀색은 명나라, 푸른 잎은 청나라를 뜻하며 두 마리의 곤충은 잎사귀를 갉아먹어 청이 망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했다는 얘기가 있다. /사진제공=대만국립고궁박물원



中 유물 70만점 넘게 보유… 美·獨 등 해외서 잇단 전시
작년 관람객 540만명 넘어 시설규모 3배로 확대 추진
연말 남부지역에 분원 개원… 고려청자 등도 전시 계획
한국과 교류 활성화 됐으면…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에는 수천년 중국 역사가 담긴 70만여점의 유물, 그야말로 '중화문물의 정수'가 담겨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전시물의 반환을 보장해준다면 언제라도 전시가 가능합니다. 국립박물관과 교류전을 갖는 것도 물론이죠. 정부나 국회의 보장으로 최근 미국과 독일·호주에서 전시를 가졌고 현재 캐나다와 협상이 진행 중입니다." 올해로 개관 90주년을 맞는 대만 국립고궁박물원 펑밍주(馮明珠·64·사진) 원장은 지난 6일 대만 현지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적극적으로 고궁박물원의 문을 두드리는 한국 박물관이 없다"고 아쉬워했다. 2012년 취임한 그는 이번이 한국 언론과의 첫 인터뷰다. 펑 원장은 말 그대로 고궁박물원의 '통(通)'이다. 국립대만대 석사를 마치자마자 바로 고궁박물관에 취업한 그는 주요 보직을 거치며 36년째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사실 해외 전시 때마다 상대국 정부의 반환 보장을 요구하는 것은 통상적인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국과 좁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대립하는 대만의 외교적 고민이 숨어 있다.

그야말로 '주요2개국(G2)'으로 전 세계에 압력을 행사하는 중국 때문에 나라 이름조차 '중화타이베이(CT·中華臺北)'로 강요당하고 유엔에서 밀려나 수교국도 23개국뿐인 입장이다. 해외 전시 중에 중국 정부나 민간의 소송이라도 제기되면 특별한 장치 없인 그야말로 낭패다. 당연히 상대 정부나 국회의 예외적인 보장을 받지 않고는 절대 소장품을 해외로 내보내지 않는 이유다.

◇추리고 추린 70만점 유물 '중화문물의 정수'=현재 고궁박물원이 소장한 유물은 70만여점, 그 숫자도 그렇지만 더 중요한 건 질(質)이다. 미국·독일·캐나다 등이 번거로운 보증 약속을 하면서까지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의 전시를 반기는 이유다. 과거 국민당 정부가 일본군·공산당에 밀려 후퇴하면서도 가장 우선적으로 지켜냈던 중국 내 최고 유물이 모인 베이징고궁박물원에서도 고르고 또 고른 컬렉션이기 때문.

1933년 일본군이 산해관으로 진격해오고 다급해진 중국 국민당 정부는 이듬해 베이징고궁박물원은 물론 이화원과 국자감 유물까지 총 2만여 상자를 상하이로 내려보냈다. 이 유물은 1936년 난징, 1937년에는 쓰촨으로 계속 남하한다. 세계 2차대전이 끝났지만 이번에는 공산당과의 내전. 결국 국민당은 유물을 다시 한 번 추려 1948년 대만으로 건너간다. 이때 포함된 것이 원래 고궁박물원과 중앙박물원에 있던 기물과 서화·도서문헌 등 총 60만8,985점이다. 수천년 중국 문화예술을 대표하는 유물 컬렉션이라 할 수 있다.

그토록 다급한 와중에도 국민당 정부는 적극적으로 해외 전시에 나섰다. 전쟁에는 패했지만 대만의 정통성을 선전하고 중국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기에 그만한 이벤트가 없기 때문. 일본군에 쫓기던 1935년 영국 런던에서 '중국예술 국제 전시회'를 열고 1939년에도 대표유물 100점을 추려 러시아 레닌그라드에서 '중국예술전시회'를 개최했다. 대만으로 물러앉은 1961년에는 대표유물 253점으로 1년간 미국의 뉴욕·샌프란시스코 등의 5대 도시에서 '중국의 국보' 전시를 기획했고 그중 핵심유물 50점은 뉴욕 세계박람회에 보냈다. 이 같은 기조는 현재도 마찬가지다.

소장품도 계속 추가되고 있다. 원래 중국 베이징고궁박물원에서 추려온 소장품 60만여점에, 이후로도 꾸준히 기증받고 사들여 지난해 7월 말 기준 총 69만6,306점으로 집계된다. 비용은 기본적으로 정부 예산에 2000년 조성된 예술발전기금이 사용된다. 박물원 내 매장 수익과 캐릭터·라이선스 상품 로열티의 각 20%가 예술발전기금으로 쌓인다.

펑 원장은 "기본적으로는 기존 소장품을 보완할 수 있는 작품을 사들이고 연말 개원할 남부 분원을 위해 일본과 한국 도자기도 다수 확보한 상태다. 박물원 내 매장 수익과 기념품 로열티가 쌓이고 정부 예산과 독지가 기증까지 생각하면 소장품 구매비용에 무리가 없다"고 설명했다.

◇"전시공간 현재 3배로 확대할 것"=당연히 관광객 사이에서도 고궁박물원의 인기는 단연 최고다. 최근 대만 관광국의 설문조사에서도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 실제 관람객 수도 꾸준한 증가세다. 2009년 257만명이던 연간 관람객 수가 2014년 3·4분기 이미 540만명을 넘겼다. 5년도 안 돼 2배 넘게 증가한 것이다.

이 같은 관람객 증가에 맞춰 고궁박물원은 꾸준히 전시공간을 확장해왔다. 1965년 현재 위치에 개관한 이래 2007년까지 무려 다섯 번에 걸친 리모델링이 진행됐다. 그럼에도 현재 2,000여평의 공간에 3,000여점의 소장품이 전시된다. 전체 70만점의 0.4%만 보여줄 수 있는 수준. 소화 가능한 관람객도 연간 300만~350만명 정도로 이미 2010년 포화단계에 진입했다.

대만 정부도 이를 인식하고 이미 2010년 확장계획을 승인했다. 이에 따르면 전시공간이 현재의 3배인 6,000여평으로 늘어나고 연간 1,000만명의 관람객을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다. 현재 공사에 따른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프랑스 루브르미술관의 경우 전시공간을 확장한 후 관람객이 4배 넘게 불어난 990만명을 기록했습니다. 전시물의 가치로는 고궁박물원도 뒤지지 않습니다. 관람객 분산을 위해 평일 전시시간을 오후6시30분까지 연장하고 주말에는 오후9시까지 열지만 역부족이죠. 시설 확장은 선택이 아니라 꼭 필요한 일입니다."

올해 말 남부 지역에 고궁박물원의 분원을 여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첫 전시가 '아시아를 향한 창(窓)'인 것에서 드러나듯 아시아 지역의 예술작품에 집중하는 곳이다. 박물원 내 중국 외의 유물이 다수 전시되고 추가로 한국과 일본의 도자기도 사들였다. 역시나 한국과 교류가 없다 보니 일본에서 한국 도자기 유물을 구했다고 한다.

펑 원장은 "박물원 내에는 칠기와 한문서적이 조금 있는 정도로 이번 분원 개원에 맞춰 한국 고려청자류를 일본에서 빌리거나 구해왔다"며 "한국 유물을 일본에서 구할 정도로 한국 박물관과의 교류가 적은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만은 아열대 기후로 한국과 다른 경관을 느낄 수 있고 기후도 따뜻해 겨울 나기에도 그만"이라며 "2013년 TV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에 소개되며 한국에서의 관광객이 매년 늘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고궁박물원 관람객 중 한국인 수도 2012년에는 9만명 남짓이었던 것이 지난해 15만명에 육박하는 수준이 됐다.

'하나의 중국' 내세우는 중국 눈치에… 공식 수교국 23곳 그쳐



■ '국제사회의 고아' 대만
한국도 중국과 수교 위해 1992년 단교
국제행사서 국호·국기도 사용 못해


지난 1992년 8월24일 한국은 대만과의 44년 우호관계를 접었다. 중국과의 수교를 위해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겠지만 그 과정은 어설프다 못해 무례할 정도였다. 단교 직전까지 이 사실을 숨겼던 한국은 대만 측에 사흘 내 대사관을 비우라고 통보했다. 그러고는 돌아서 바로 중국에 그 자리를 넘겨줬다. 좀 더 솔직하게 양해를 구할 수 없었을까.

오랜 기간의 좋은 관계가 이런 아쉬움을 더한다. 수교 기간이 44년이지만 인연은 60여년을 헤아린다. 대만의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장제스 총통이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중국 상하이 훙커우공원의거를 지원한 것을 시작으로 본다면 말이다. 또 독립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을 때 이를 세계 두 번째로 승인한 것이 대만이고 그 대한민국이 1949년 처음 세운 재외공관도 바로 대만, 주중화민국대한민국대사관이다. 그런 관계도 '하나의 중국'을 내세우는 중국과의 수교를 위해 단칼에 절단 났다.

한때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나란히 주목을 받았던, 비행기로 고작 2시간 반 거리인 두 나라는 닮은 점이 아주 많다. 모두 장기간 일본의 식민통치와 이념으로 인한 분단을 맞았지만 '기적'에 가까운 경제발전을 이루며 선진국 문턱에 들어섰다. 조금 다르다지만 장기간 군부·권위주의 통치 기간 이후 정치적 민주화를 이뤄냈다. 경제적으로 서로 5대 교역국이다. 우리보다 경제규모는 작지만 잘 갖춰진 교육제도와 탄탄한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는 대만의 큰 장점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대만은 '국제사회의 고아'로 불릴 만큼 고립돼 있다. 앞서 말한 중국의 힘이다. 더 큰 정치·경제적 이익을 약속하는 중국과 수교하려면 대만을 등져야 한다. 이 때문에 대만은 1971년 유엔 및 산하 기구에서 퇴출당하고 합법적인 대표권을 상실했다. 공식적인 수교국도 바티칸을 포함해 23곳에 그친다. 실질적인 독립 상태지만 '미승인 국가'다. 국제적인 행사에서도 국호 '중화민국' 대신 중화타이베이(CT)를 써야 하고 과거 사용하던 국기(청천백일기)와 공식국가(삼민주의가) 역시 해외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 중국의 항의가 부담스러운 각국이 이를 꺼리기 때문이다.



She is…

△1978년 국립대만대학교 역사학과 석사, 국립고궁박물원 입사

△2008~2011년 고궁유물예술발전기금관리회 소집인

△2008~2012년 국립고궁박물원 부원장, 행정원 국가위원회 디지털소장 및 디지털 학습 국가 과학기술 계획 지도 소조 위원

△2009년~ 몽고티베트위원회 연구위원

△2010년 중화민국박물관학회 이사장,

△2012년~ 국립고궁박물원 원장

△2014년~ 태평양지역 컨소시엄 중화민국 위원회 및 박물관위원회 의장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