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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6월21일] 에드워드3세


영국왕 에드워드 3세. 백년전쟁을 시작한 군주로 기억되는 그는 경제사에도 적지 않은 흔적을 남긴 인물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단초를 제공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명군으로 꼽히는 그의 권력은 두 번의 피바람으로 다져졌다. 프랑스 공주 출신인 모친이 부왕을 몰아내는 바람에 13세 때 왕위에 올라 성년이 되자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어머니까지 쫓아냈다. 권력을 장악한 그의 다음 행보는 프랑스와의 전쟁. 후사 없이 사망한 샤를 4세의 조카인 자신에게 프랑스 왕위계승권이 있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 목적은 경제적 이해득실에 있었다.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자 영국 수출품의 90%를 차지했던 양모를 수입해가는 플랑드르 지역의 모직 생산업자들을 프랑스의 중과세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들 흑태자를 앞세운 그는 연전연승을 거뒀다. 귀족과 기사로 구성된 프랑스의 고비용 중장갑 기사단이 농민 출신의 저비용 웨일스 장궁(長弓)병에 무참하게 깨진 크레시ㆍ푸아티에 전투 이후 기사무용론이 일고 국왕-영주-기사로 이어지는 중세의 봉건적 권력구조도 약해졌다. ‘가진 자의 책무’도 백년전쟁 당시 완강하게 저항하던 프랑스 칼레를 점령한 그가 ‘시민들을 처형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을 때 먼저 희생당하겠다고 나선 부유층과 귀족을 용서한 사건에서 비롯됐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용어가 이때 생겼다. 1377년 6월21일, 65세로 사망한 에드워드 3세는 국제 금융지도도 바꿨다. 재정규모보다 몇 배나 많은 전쟁비용 136만 플로린을 바르디ㆍ페루치 등의 은행에서 공동 대출받은 후 갚지 않아 이탈리아에 은행 연쇄파산과 불경기를 안겼다. 그의 채무불이행 수법을 각국의 군주들이 본뜨자 유럽의 금융을 장악했던 이탈리아 도시국가들도 결국 쇠락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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