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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웃음·슬픔 품은 복수… 그래서 더 잔인한 비극

[국립극단]조씨고아,복수의씨앗_07

웃음과 눈물이 한 데 섞여 나뒹군다. 극단의 감정을 요리하며 내달려온 이야기는 먹먹한 질문을 던진 채 끝을 맺는다. 모두가 바랐던 결말에도 결코 환호할 수 없는 씁쓸한 뒷맛은 그 자체로 지독하게 잔인한 비극이다. 국립극단의 신작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오랜 시간 문학의 화두이자 비극적 주제로 사랑받아 온 '복수'를 무대에 세운다.

원작은 중국의 4대 비극이자 18세기 유럽에 소개돼 '동양의 햄릿'이란 찬사를 받은 명작 '조씨고아'다. 조정의 중신 '조순'이 정적 '도안고'의 계략에 역적으로 몰려 일가 300명이 멸족되는 재앙을 겪고, 조순에게 은혜를 입었던 시골 의원 '정영'은 제 새끼를 희생하며 조씨 가문의 마지막 핏줄 '고아'를 살려내 도안고를 향한 복수를 준비한다.

웃음과 슬픔의 절묘한 조화는 이 작품의 비극성을 극대화한다. 여린 마음에 살생을 못 해 약초만 캐며 살아온, 그러나 마흔다섯에 얻은 아들을 위해 처음 제 손으로 물고기를 잡은 아비 정영. 그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고아'를 위해 제 자식을 사지로 내모는 과정엔 여러 인물의 한(恨)이 켜켜이 쌓인다. 억울하게 죽어 간 고아의 가족과 영문도 모른 채 죽음을 맞이한 정영의 젖먹이 아기, 숨 끊어진 자식을 품에 안고 망연자실한 어미… 무거운 공기를 환기해 주는 것은 곳곳에 쉼표처럼 자리한 희극적 요소다. 무협 신파극을 보는 듯한 독특한 리듬의 대사나 과장된 동작, 슬랩스틱은 극 중 적절히 녹아 들어가 감정의 완급을 조절한다.

소품을 최소화한 텅 빈 반원형 무대는 배우가 선사하는 극단의 감정을 오롯이 담아낸다. 1막 말미 산 아이(고아)와 죽은 아이(정영의 아들)를 두고 정영과 그의 아내가 대치하며 대사 없이 슬픔을 토해내는 장면에선 원망과 죄책감이 선 굵은 콘트라베이스 선율과 만나 무대의 여백을 채운다.



20년 만에 이뤄낸 고아의 복수. 그래서 결말은 허탈하고 또 잔인하다. '도대체 네 인생은 뭐였어?' 도안고가 던지는 질문에 정영도, 객석의 관객도 쉽게 답을 건넬 수 없다.

고선웅 특유의 재기발랄한 연출과 정영 역의 하성광, 도안고 역의 장두이 등 연기파 배우들의 열연이 160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을 긴장감 있게 요리한다. 22일까지 명동예술극장. /송주희기자 sso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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