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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지미 카터


"대통령을 하지 않고 퇴임 대통령으로만 남았더라면 더 존경 받았을 것이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에 대한 일부의 우스갯소리다. 지금은 인기가 높지만 1980년 대선 패배 때의 모습은 초라하고 쓸쓸했다. 오일 쇼크에 따른 경제난에다 이란 대사관 인질극 사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한 유약한 대응 때문에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카터 전 대통령은 '나이 드는 것의 미덕'이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백악관을 떠나야 했을 때 나이가 겨우 쉰여섯이었다. 세상의 절반 이상이 나의 부끄러운 패배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내 실직을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고 회고했다.

더구나 재임 기간 남에게 관리를 맡겼던 개인 농장이 빚더미에 올라앉으면서 150년간 선조들과 가족들이 터전을 잡았던 고향의 땅을 빼앗기고 집을 저당 잡힐 처지였다. 때마침 회고록이 계약된데다 수확한 땅콩의 판로가 열리면서 위기를 넘겼지만 한동안 상실감과 막막함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 인생에 도전해 빈곤층을 위한 집 짓기, 인권 활동, 질병 퇴치, 중동·북핵 문제 중재 등의 활동을 펼쳤고 2002년에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최근 미 주류 언론들도 카터 전 대통령의 암 발병 소식을 계기로 '카터의 유산(legacy)'을 재평가하는 분위기다. 그가 4년이라는 짧은 임기 동안 중국과의 완전한 국교 정상화,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의 중동 분쟁을 화해로 이끈 '캠프 데이비드' 협정 체결, 파나마 운하 소유권 반환 등을 이뤄냈다는 것이다.

이란 대사관 인질 사태도 카터 대통령이 이란과의 협상을 통해 해결해놓고 백악관을 떠났다는 사실이 비밀문서 공개 등을 통해 드러난 지 오래다. 그는 국내 정책에서도 교육부 신설과 장학금 지원 강화, 운송·에너지 산업 규제 완화, 에너지부 설립과 재생에너지 육성 등의 정책을 내놓았다.



특히 참모진의 반대를 무릅쓰고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에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불리는 폴 볼커를 지명한 게 큰 업적으로 평가 받고 있다. 당시 미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고물가)에 빠져 있었고 연준이 긴축 정책을 펼 경우 경제난 심화에 표가 떨어질 게 불을 보듯 뻔했다. 하지만 카터는 다음 해 재선 패배의 위험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당장의 정치적 손익보다는 국가의 미래를 선택한 것이다.

카터의 인생 부침은 여론이란 때로는 덧없기도 하지만 결국은 합리적인 균형점을 찾아간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지역·계층을 막론한 추모 열기도 '과'보다는 '공'이 많다는 국민적 평가에 다름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콘크리트 지지율을 자랑하는 박근혜 대통령은 수십년 뒤 어떤 찬사를 받을 수 있을까.

임기 초반 내걸었던 창조경제와 일자리 창출, 한반도 프로세스, 증세 없는 복지 등 여러 어젠다가 딱히 성과를 맺을 것 같지는 않다. 우리 경제의 시한폭탄인 가계 부채 문제는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과 맞물려 다음 정권에서 터질 것이라는 경고가 잇따르지만 단기 성과나 정권 재창출이 시급한 탓인지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대신 박 대통령은 성장 부진의 원인을 여당 일각을 포함한 국회 탓으로 돌리거나 내년 총선을 앞두고 권력 게임에 몰두하는 모양새다.

카터의 정치적 우상인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에 '여기서 최종 책임을 진다(The Buck Stops Here)'는 액자를 걸어놓았다고 한다. 그는 임기 말 인기 없는 정책에 지지율이 최악인 채로 퇴장했지만 지금은 그 어떤 평가에서도 '역대 최고의 미 대통령' 순위 10위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최형욱 뉴욕 특파원 choihu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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