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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237> ‘간장 두 종지’ 논란에 부쳐





업계 선배들이 자신이 쓴 기사나 칼럼으로 욕을 먹을 때마다 나는 가슴이 철렁한다. 첫 번째는 그들을 향한 비감한 심정이다. 글을 읽고 나면 나 역시 상당 부분 공감하기 힘들 때도 있다. 그러나 절대로 그들을 향해 쉽게 돌을 던질 수 없는 측면 역시 존재한다. 나 또한 글을 쓰는 사람이기에 똑 같은 입장에서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에 대해 평가하고, 분석하고 의견을 밝히는 순간, 누군가로부터 감정이 섞인 목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다는 현실은 글로 먹고 살아가는 사람을 힘 빠지게 하는 측면이 있다.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 또 다른 이유는 내 글로 인해 누군가가 상처를 받지 않겠는가 하는 데서 오는 불안감 때문이다. 최대한 내 감정을 자제하고 콘텐츠를 생산하려고 노력하지만, 100% 중립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자기만의 회색지대를 점한다 하더라도 결국 그 또한 하나의 입장이고 자기만의 철학이다. 그래서 최대한 인간적인 시각, 남을 배려하는 기본 자세를 갖고 현상에 접근하려고 하지만, 가끔씩 의도하지 않는 결과가 초래되는 것까지 막는 게 쉽지 않다. 그렇다고 일일이 ‘미안하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애초에 모두를 만족 시킬 수 있는 답안은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얼마 전 다른 매체의 선배 기자가 ‘간장 두 종지’ 논란으로 SNS 상에서 된통 욕을 먹었다. 말인즉슨 회사 주변의 어느 중국집에 가서 간장을 더 먹고 싶다고 주인에게 요청했는데, 좋지 않은 피드백을 받았다는 것이다. 순간 그 기자는 ‘내가 2인 1간장주의식 사회주의 사회를 살고 있는가’, ‘왜 내 돈 내고 밥을 먹으면서 감사하다고 머리를 조아려야 하나’라는 심정이 들었다고 한다. 분명한 정황이 드러나 있지는 않았기에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간장 한 종지를 더 제공하길 거부하는 주인의 말투에는 무엇인가 피로감이 묻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역시 피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저널리스트인 글쓴이도 예민하게 그 문제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결국 그의 분노는 글의 말미에 극에 달해 ‘가끔 을이 갑을 만들기도 한다’는 이야기로 입장을 마무리했다. 사실상 자기 입장에 치우친 논리적 비약이 글의 시작과 끝이었다. 왜 그런 기사를 쓰게 되었는지 어렴풋이 짐작은 가지만, 언론인으로서 왜 우리가 마음 편히 먹어야 하는 식당에서 그런 일을 겪을 수밖에 없었는지 좀 더 구조적인 통찰을 했더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서비스 산업 종사자들의 불친절은 하루 이틀 만에 생겨난 문제는 아니다. 나도 가끔 택시를 타다 보면 ‘을이 갑을 만들어 내는 현실’을 종종 경험한다. 바쁜 시간에 쫓겨 택시를 탔는데 ‘이렇게 가주세요’라고 분명히 말씀 드려도 잠깐 누군가로부터 온 모바일 메신저 메시지를 보거나 책을 읽을라 치면 오히려 시간이 더 걸리는 먼 길로 돌아가는 분들이 아주 가끔 있다. 길을 잘못 들었다는 생각에 짜증이 나지만, 오히려 손님을 빨리 데려다 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선한 기사 분들을 생각하며 ‘아, 이 길이 더 빠른가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내뱉는다. 어쨌거나 지금 내 안전을 책임져 주는 사람이니까. 다만 일종의 정보 비대칭(information asymmetry)을 활용해 고의로 길을 돌아 가는 현실은 분명히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관점의 분석도 절실하다. ‘을’이나 ‘갑’이나 서로 으르렁거릴 수 밖에 없는 가장 큰 원인은, 지나온 자신의 피해 경험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용자의 입장에서는 공급자가 자신을 속이거나 부당하게 대우할 수도 있다는 위험에 시달릴 법 하다. 물론 ‘택시가 길을 돌아가는 건 아닐까?’ 하는 내 생각 역시 피해의식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반면 공급자의 입장에서는 잠깐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고객의 갑질에 몸서리가 쳐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간장 종지’ 지적이 정말 안타깝다. 차라리 우리 사회에 이토록 가득한 불신과 피해의식에 대한 구조적 진단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모종의 아쉬움이 진하게 남기 때문에.
/김나영기자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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