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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타는 영화&경제] (4) ‘메트레스 연인’과 저출산경제

여주인공 슈코(오른쪽)와 중년 대학교수 토노의 혼외만남은 애초부터 불륜이다. /출처=네이버영화





#결혼이 경제적 자립과 자유의 상실이라면

남녀의 사랑이 꼭 결혼으로 이어지는건 아니다. 일본 영화 ‘메트레스 연인’의 여주인공 슈코(카와시마 나오미)가 이혼남 토노(미타무라 쿠니히코)의 청혼에 대답한 말도 “사랑의 끝은 꼭 결혼이 아녜요”였다. 긴자의 고급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소믈리에(와인전문가)로 일하는 슈코. 그녀가 소중하게 여기는건 일과 자유다. 소믈리에로서 ‘마리아주’(요리와 와인의 찰떡궁합)에 최선을 다하면서 퇴근 후엔 자유로운 시간을 즐기기를 좋아하는 슈코다. 만약 결혼이란 것이 직업인으로서의 자립과 생활인으로서의 자유를 잃게 되는 것이라면 슈코가 결혼을 선뜻 받아들일 수 있을까?

요즘 우리나라에선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다는 뜻의 ‘3포 세대’ 여성들이 늘고 있다. 덩달아 출산율도 세계 꼴찌 수준이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1.21명. 중국에 속한 홍콩(1.20명)과 마카오(1.19명)를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가장 적은 곳이 한국이다. 한국 경제에도 저출산은 엄청난 재앙이다. 저출산을 이대로 방치해 현재 662만명인 노인인구가 2030년 1,269만명, 2050년엔 1,800만명으로 많아지면 경제의 성장은커녕 지탱조차 어려워진다.

‘저출산경제’의 재난적 상황을 막으려는 정부의 대응책이 나왔다. 지난 18일 발표된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보면 정부는 2020년까지 합계출산율을 1.5명까지 높일 계획이다. 신혼부부의 전세대출 한도를 1억에서 1억2,000만원으로 올리고, 신혼부부에게 나이가 어릴수록 임대주택 청약 가산점을 주는 등 세부안도 들어 있다. ‘결혼 촉진’에 방점이 찍힌 정책이라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지만 비판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종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재탕삼탕식 정책에 뜬구름 잡기 식 약속이 수두룩하다. 그러니 저출산의 실태 보다 정책의 전시효과에 연연한 ‘자기중심적’ 행정이라는 소리까지 나오는 것이다.

“함께하는게 안좋을 때가 있다”고 말하던 토노는 집에서 쫓겨난뒤 슈코에게 “함께 있어달라”고 매달린다. /출처=네이버영화



#서로의 독립된 삶이 존중되는 게 멋진 결혼?

영화 ‘메트레스 연인’에서 토노는 철저히 자기중심적이다. 아내 몰래 슈코와 정을 통할 때 토노의 태도가 다르고 불륜이 들통나 집에서 쫓겨난 뒤가 또 다르다. ‘안전한 불륜’을 유지하고 있을 때 토노는 슈코에게 “함께하는게 안좋을 때도 있어. 짐은 가벼울수록 좋기도 하지”라고 말했다. 그런 토노가 아내로부터 버림받고는 “갈데가 없어”라며 쇼코에게 매달린다. 또한 쇼코 집 열쇠까지 요구하며 “이혼하기로 했어. 나와 있어줘”라며 애걸복걸한다. 이렇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걸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이혼 뒤 슈코에게 청혼하면서도 토노는 이기적 태도를 버리지 못한다. 대학교수인 자신이 미국 알래스카에 5년간 근무하게 됐으니 슈코더러 모든걸 버리고 무턱대고 따라오라는 식이다. 소믈리에라는 일과 퇴근후 자유를 사랑하는 슈코지만 몹시 흔들린다. 사랑하는 토노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에게 버림받은 토노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슈코는 자신의 일과 자유에 심각한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레스토랑 지배인으로부터 “소믈리에로서 자각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핀잔까지 듣게 될 지경이니 프로로서의 자존심이 말이 아니다. 결국 슈코는 ‘마리아주’(요리와 와인의 조화)의 세계로 돌아간다. 토노에게는 “제가 있을 곳을 잃기 싫어요”라는 말을 남긴 채.

영화 제목의 ‘메트리스’는 독립된 삶을 살아가는 남녀관계라는 뜻이고 여주인공 슈코가 꿈꾸는 ‘마리아주’엔 멋진 결혼이란 뜻도 있어 서로 절묘하게 쌍을 이룬다. 혹시나 멋진 결혼이란 서로의 독립된 삶이 존중받을 수 있을 때 가능하다는 작가의 메시지가 은연중에 깔린건 아닐까? 이 작품의 원작자가 베스트셀러 소설 ‘실락원’으로 유명한 와타나베 준이치다 보니 별별 상상을 다 해본다.

소믈리에로서의 일과 퇴근후의 자유를 사랑하는 슈코는 이 모든 것을 잃게될 결혼을 받아들일 수 없다. /출처=네이버영화



#‘저출산경제’ 탈출, 남녀평등에서 출발해야

‘일과 자유의 상실’을 의미하는 결혼을 거부한 슈코의 선택은 이론적으로 경제심리학자 카너먼과 트베르스키가 정립한 ‘기대이론’에 대입해 볼 수 있겠다. 불확실성과 이에 직면한 사람들의 경제적 선택에 대해 연구한 두 학자는 “인간은 본성은 불확실성을 싫어하고 손실을 기피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설문조사를 해 보니 “손실은 언제나 치명적으로 느껴지며 확실한 이익보다 더 커 보이는 경향이 있다”는 결론이 도출됐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결혼 이후의 손실을 기피한 슈코의 선택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나라 여성들은 결혼 앞에서 어떤 선택 항목을 갖고 있나? 기대보다는 불확실성과 위험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클지도 모른다. 엄청난 주거비와 생활비는 설령 맞벌이 부부라도 감당하기 어렵고, 양육비와 교육비를 걱정에 자녀를 낳고 기르기도 두려운 것이 현실이다. 남녀 불평등은 한층 심각한 문제다. 여성은 대학을 나와도 남성에 비해 취직에 불리하다. 2014년 기준 남성의 대졸 취업률은 88.8%인데 여성은 65.1%에 불과하다. 남녀간 월 평균 임금 격차 또한 312만 대 209만원으로 상당히 크다. “누가 결혼하기 싫어 안 하겠냐”란 볼멘 소리가 여성들 입에서 나올 만도 하다. 직장 문화도 문제가 많다. 여성은 육아휴직이 당연한 권리인데도 눈총을 받아야 할 뿐 아니라 복직 뒤엔 승진 등에서 불이익을 당하기 십상이다. 이렇듯 남녀 임금격차와 승진차별이 심하니 한국의 ‘유리천장’ 지수는 100점 만점에 고작 25.6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8개국 가운데 3년 연속 꼴찌다. 부끄럽게도 대한민국은 남녀평등에서만큼은 부동의 후진국이다.

‘저출산경제’의 탈출은 남녀평등에서 시작해야 한다. 연애·결혼·출산 ‘3포’의 단절도 결혼에 대한 여성의 기대가 걱정을 잠재울 수 있어야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선 가정부터 달라져야 한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하루 가사노동 시간도 여성이 평균 4시간 9분으로 남성의 47분에 비해 압도적으로 길다. 이런 것부터 하나하나씩 고쳐나가야 다시 아기 울음소리로 가득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 영화 속 슈코도 독립된 일과 퇴근 후의 자유를 누리는 삶을 원하지 않았는가. 현실도 마찬가지다. 경제적 자립과 저녁이 있는 삶을 사랑하는 짝과 함께 할 수 있다면, 그런 ‘결혼생활’을 마다할 여성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문성진기자 hnsj@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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