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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가 도시경쟁력이다] <3> 세계 바이오인재 끌어모으는 싱가포르

"아이디어만 좋으면 누구나 VIP"… 미니마을, 글로벌 바이오허브로 우뚝


여의도 1.5배 도심에 15년 공들여 업무·주거·문화·휴식공간 집적
연구인력·가족 편의시설 제공

반짝이는 기술력만 확인되면 연구비·연구시설 무제한 제공
고급인력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화이자 등 글로벌기업 38곳 둥지… 바이오산업 비중 전체의 26%로
일자리 2만여개 창출 효과도


우뚝 솟은 금융사 빌딩과 화려함으로 치장한 명품관이 즐비한 싱가포르 도심에서 남서쪽으로 10여분 차로 달리다 보니 'BIOPOLIS(바이오폴리스)'라고 쓰여진 큼직한 안내 표지석이 눈에 들어왔다. 글로벌 바이오 인재를 끌어모으고 있는 '바이오폴리스' 마을이 다.

표지석 가까운 곳에 위치한 세탁소는 첫인상부터 남달랐다. 안을 들여다보니 양복 대신 실험실에서 입는 흰 가운이 다닥다닥 걸려 있다. 커피전문점에도 실험 가운을 입은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마치 거대한 병원이나 연구소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올 정도다. 거리에도 두꺼운 생화학 관련 책을 끼고 다니는 사람들로 넘쳐 난다. 모두가 전 세계 각국에서 몰려 온 바이오분야 연구개발(R&D) 인력들이다.

여의도공원의 1.5배 정도인 34만㎡(약 10만평)에 불과한 도심 속 미니마을, 바이오폴리스. 이곳에는 이미 글로벌 제약업체인 GSK(글락소 스미스클라인)를 비롯해 노바티스, 화이자 등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글로벌 제약사 38개가 몰려 있을 정도로 전세계 바이오산업의 허브로 부상하고 있다.

싱가포르가 바이오폴리스를 만들게 된 것은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력 산업이던 물류와 금융, 관광산업은 2000년 이후 중국의 부상으로 경쟁력이 계속 하락하자 위기감을 느낀 싱가포르 정부는 차세대 성장동력을 고민한 끝에 고부가 가치 산업인 바이오 분야에 역량을 집중키로 했다. 바이오 R&D인력이 쾌적한 도심에서 먹고 자고 연구할 수 있도록 계획된 도시를 만든 것이다. 싱가포르 과학기술청 관계자는 "도시설계에서 가장 강조된 것은 바이오폴리스 안에서 모든 것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자랑했다. 의식주를 한 번에 해결해 편의성을 높여 준 게 전 세계 고급 인력들이 앞다퉈 모여들 수 있게 한 숨은 비결이라는 것이다.



바이오폴리스를 돌아보면 업무공간과 주거공간, 문화·휴식·놀이공간이 조화롭게 설계돼 있다는 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단순히 연구시설과 휴게시설 몇 개를 모아 놓은 것이 아니라 연구인력과 그 가족을 위한 아파트, 상업시설 등을 망라한 하나의 '과학마을'을 만들어 놓았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를 예로 들면 삼성전자 본관 부근에 연구원들의 자녀가 다닐 학교나 어린이집, 놀이시설이 위치하고, 바로 그 뒤는 주거지가 있고 다시 그 주변에는 롯데마트나 백화점 등 편의시설이 걸어서 갈 정도로 집적돼 있다. 이곳에서 만난 한 네덜란드 국적의 연구원은 "굳이 이곳을 벗어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모든 게 잘 갖춰져 있다"며 "연구를 위한 최적의 조건"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렇게 연구인력들이 몰려 있다 보니 거리에서도, 주거지에서도 쉽게 인적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다는 것도 매력이다. 바이오폴리스에 입주해 있는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아시아지사의 이동준 지사장은 "아침 출근길 휴게공간에 위치한 커피전문점만 방문해도 스타트업 관계자가 세계적인 기업 사람들과 아무 거리낌 없이 인사를 나눌 수 있는 환경"이라며 "자연스레 친분을 쌓아 가며 정보공유도 하는 선순환이 이뤄지는 구조"라고 말했다.

바이오폴리스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싱가포르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한몫했다. 싱가포르정부는 바이오폴리스 건립 초기 "번뜩이는 아이디어만 갖고 있으면 오라"며 유명 기업이 아니더라도 단지에 입주시켜 연구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게 문턱을 낮췄다. 회사의 크고 작음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기술력만 확인되면 연구비를 무제한 지원해 주고 최고급 연구시설을 제공해 우수한 해외인력들을 블랙홀처럼 쑥쑥 빨아들인 것이다. 사무실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했고, 공동실험실은 저렴한 비용으로 대여가 가능하도록 했다. 스타트업의 경우 연구비 등에 쓰일 자금조달을 정부가 나서 도와줄 정도로 아이디어만 좋으면 누구나 'VIP(귀빈)'로 대접했다. '전원만 꽂으면 된다(Plug & play)'고 할 정도로 아이디어만 있으면 인큐베이팅 등 지원은 바이오폴리스가 책임진다.

싱가포르 정부는 미래산업 확보를 위해 국내에서라면 당장 형평성이나 특혜시비 논란이 일 수도 있는 이 같은 파격적인 정책을 추진했다. 싱가포르 과학기술청 관계자는 "바이오폴리스는 우수한 인재를 키워나가는 데 집중했고, 인재가 있어야 바이오 산업을 이끌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싱가포르 정부의 이 같은 파격 지원 덕에 2003년 사스 때와 2013년 조류독감 유행때 바이러스를 정확하고 빠르게 진단할 수 있게 만든 진단 키트들을 이곳에서 가장 먼저 개발하고 상품화하는 성과를 냈다. 뿐만 아니라 이론상으로만 가능한 기술을 갖춘 연구소 수준의 기관 40여개를 벤처기업으로 성장시키는 데도 성공했다.

바이오폴리스의 성공은 물류·금융·관광이 중심인 싱가포르 산업구조 자체를 뒤바꾸고 있다. 지난 2000년 싱가포르 경제에서 10% 남짓 차지하던 바이오산업 비중은 2012년에는 26%로 뛰어오르며 전체 산업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지금까지 생겨난 일자리만도 R&D 분야에서 5,427개, 생산직에서 1만 5,700개에 달한다. 이미 입주해 있는 글로벌 제약업체들이 인력을 추가 확충할 계획인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일자리는 꾸준히 늘어날 전망이다. /싱가포르=이완기기자 kingear@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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