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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장군이 위세를 떨친 21일 아침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공업고등학교 성림관. 오전8시도 안 된 이른 시간에 이정빈(17·전기전자과 2학년)군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방학 중이지만 석달 앞으로 다가온 기능경기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한파를 뚫고 학교에 나온 것이다. 이군은 서랍에서 연필 대신 전동드라이버를 꺼내고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몇 해 전 삼성중공업에 합격한 선배가 후배들에게 보내 준 회사 작업복이다. 이군은 "선생님이 짜 준 도면을 바탕으로 21가지 작업을 완벽하게 수행해 마지막에 기계가 작동하는 것을 볼 때가 가장 뿌듯하다"고 말했다. 중학교 내신이 상위 20% 안에 들었던 이군은 전기 기술자인 아버지가 기술을 먼저 배울 것을 추천해 서울공고 전기전자과에 소신 지원했다. 그는 "전력통신(PLC) 프로그래머가 꿈"이라며 "일단 취업을 한 후에 필요하면 대학에 가겠다"고 말했다. 올해 이 학교 전기전자과의 취업률은 90%를 넘겼다.
취업난이 극심해지면서 '기술에는 정년이 없다'는 생각으로 특성화고의 문을 두드리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일반고에서도 고졸 취업을 목표로 특성화고에 기술 교육을 위탁받거나 학원에서 기술교육을 받는 사례도 부쩍 증가했다. 교육부는 이 같은 수요에 따라 특성화고·마이스터고 학생 비율을 현재 19%에서 오는 2022년에는 30%까지 늘릴 계획이다. 이 가운데 취업률 71.6%를 달성한 서울공고가 '고졸 성공시대'를 열어 가고 있다.
서울공고 졸업생들은 공무원 기술직 취업도 활발하다. 올해 서울특별시와 서울시교육청의 9급 공무원 공개채용시험에 27명이 합격해 전국 특성화고 중 최다 기록을 세웠다. 서울시 9급 공무원 공개채용시험에 합격한 김민수(18)군은 공무원이 된 선배들을 보고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김군은 "전공과목 선생님이 매달 5년 뒤, 10년 뒤 계획을 써보라고 하고 상담을 해줬다"며 "2학년 때 PLC 연구 동아리에 들어가서 기기에 깔리는 회로 설치를 실습하고 방학 때마다 학교에서 공무원 시험 대비 수업을 들은 게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김군과 함께 서울시 9급 공무원이 된 김진태(18)군은 "부모님이 서울공고에 진학하고 나서도 대학을 가라며 반대를 하셨는데 지금은 잘한 선택이라고 주변에 특성화고 진학을 추천하신다"고 뿌듯해 했다.
서울공고는 1899년 고종 황제의 칙령으로 설립된 후 117년 역사를 지닌 뼈대 있는 학교다. 올해 공공기관에 30명, 삼성중공업 등 대기업에 25명을 취업시켰고 중소기업 합격자도 260명에 달했다. 졸업생 10명 가운데 7명이 직장을 찾아 취업이 가장 잘되는 4년제 대학 공학계열 졸업생의 취업률(65.6%)보다도 높다. 이상범(사진) 교장이 부임한 후 2013년까지만 해도 35%에 불과하던 졸업생 취업률이 2년 만에 2배 이상 뛰었다.
이 학교의 성공 비결은 '뚜렷한 목표 의식'과 '자기주도학습'으로 요약된다. 입학 때부터 오리엔테이션과 전공체험 기회로 기술이라는 한 우물만 판다. 오리엔테이션 때는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진로에 대해 학생들끼리 토론을 하고 스스로의 목표를 발표하는 시간을 갖는다. 학생들의 목표는 '나의 목표'라는 이름으로 사진과 함께 교실·학과사무실·복도에 붙여 목표의식을 불어넣는다. 입학 전에 미리 전공 기능반, 전공 동아리 체험도 할 수 있다. 이날도 올해 입학하는 신입생 4명이 실습실을 찾았다. 신입생 권영범군은 "중학교 내신은 30% 이내에 들었지만 서울공고 전기전자과가 취업에 강하다는 소문을 듣고 지원했다"며 "직접 와서 보니 어떻게 준비해서 취업을 해야 할지 자신이 더 생겼다"고 말했다.
자기주도학습으로는 1학년 때는 전공 스터디, 2학년 때 전공 동아리 교육, 3학년은 취업 맞춤반이 진행된다. 목표나 성향에 따라 끊임없이 선택을 달리하고 전략을 세워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기주도학습에 강해진다는 게 학교 측의 설명이다. 자동제어·세라믹캐드 등 전공 동아리만 해도 18개에 달한다. 전공 동아리에서는 주로 전공 심화 과정을 배우다 보니 일정한 실력을 갖춰야 입단 테스트에 통과할 수 있다.
이 서울공고 교장은 "취업률만 높이는 것을 넘어 취업하는 기업들의 질을 높이는 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교장과 교사가 매달 취업한 아이들이 있는 기업으로 직접 지도를 나가고 협력기업 발굴에도 힘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혜진기자 madein@sed.co.kr 사진= 권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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