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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휴정 PD Cinessay] 가정폭력에 맞서는 용감한 모정

●전사의 후예

영화 '전사의 후예'포스터
뉴질랜드 영화 <전사의 후예> 포스터. 18년간 가정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자녀를 지키기 위해 맞서는 여성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가정폭력의 희생자들을 두 번 죽이는 질문이 있습니다. 왜 신고하지 않았나요, 왜 도망치지않았나요? 때리는 이유가 있지 않았나요?...가정폭력은 이유가 없는, 정상적인 사고나 행동을 할 수 없게하는 잔인한 범죄입니다.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남자라면 평소에도 얼마나 공포스럽겠습니까. 신고하면 가만두지 않겠다, 도망가면 끝까지 찾을거다...누군가에게 거친 반말만 들어도, 작은 폭력에도 인간은 쉽게 무너지는데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가정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오랜 시간 정신과 육체가 짓밟힌 사람이 적극적으로 신고하고 도망갈 용기를 내기는 거의 불가능할겁니다. 게다가 가정폭력을 당하는 여성은 친정이 가난하거나 도움을 청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더욱 자포자기하게 됩니다. 우리 사회의 시선도 참으로 냉정합니다. 몇 년전, 남편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이주여성도 이웃 모두 밤마다 그녀의 비명소리를 들었지만 아무도 신고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어느 구석진 방에서는 '엄마'라는 이유로, '자식'을 지키기위해서 말도 안되는 폭력을 당하는 이웃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자식을 사랑한다면 엄마는 가정폭력에 맞서야합니다. 뉴질랜드 영화 <전사의 후예>(1995년작, 리 타마로리 감독)는 18년간 가정폭력을 당한, 그러나 자녀를 위해 용기를 내는 한 여성의 눈물겨운 이야기입니다.

용맹하고 자부심 강한 마오리족의 후예, 베스(레나 오웬)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노예 출신 제이크와 결혼,
영화 '전사의 후예'포스터
뉴질랜드 영화 <전사의 후예> 포스터. 18년간 가정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자녀를 지키기 위해 맞서는 여성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고향을 떠납니다. 하지만, 사랑만으로는 현실을 이겨내기가 힘들었습니다. 백인중심 사회에서 소수민족으로 살기가 가뜩이나 힘든데 폭력적인 제이크는 제대로된 직장을 얻지 못합니다. 스스로를 '또라이'라 부르며 술에 빠져 사는 제이크는 사소한 일에도 불같이 화를 내고 "성질 건드리지마라, 죽여버릴거다"는 말을 달고삽니다. 죽도록 맞고 살면서도 '여자의 삶은 원래 이런 것' '언젠가 아이들도 엄마를 이해해주겠지'라며 다섯명이나 되는 아이들 때문에 모든 고통을 참는 베스. 하지만 아이들이 먼저 어긋납니다. 아들 둘은 범죄에 빠지고 글쓰기를 좋아하며 집안의 기대를 한몸에 받던 그레이스는 아버지가 끌어들인 술친구에 의해 끔찍한 일을 당한 후 자살합니다. 베스는 그제서야 모든 것이 잘못되어있음을, 이 불행의 고리는 결국 자신만의 끊을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결혼과 함께 잊고 있었던 자신의 뿌리- 마오리족으로서의 자존감, '전사의 후예'로서 세상을 이겨낼 용기를 되찾은 겁니다. 온갖 저주를 퍼붓는 제이크를 뒤로하고 베스는 자녀들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저는 '가정폭력은 대물림된다'는 표현도 정말 신중하게 써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정폭력에 시달렸던 것도 억울할 일인데, 이제는 '대물림된다'고 불행한 미래까지 예견하니 어차피 불행할거, 더 용기를 낼수가 없습니다. 가정폭력으로 고통받던 여성이 다시 사회생활을 하면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보는 것도 너무 냉혹합니다. 평생을 마음 졸이고 그늘에서 살았으니 이제는 따뜻한 햇볕도 쬐고 사람들과 어울려 밝게 살수있도록 우리가 도와줘야합니다. 지난 2014년, 남편이나 남자친구에 의해 살해당한 여성은 최소 114명입니다. 아내말이라면 꼼짝을 못하는 능력있고 멋진 남편, 아이들에게 헌신적인 화목한 가정의 관찰 예능이 넘쳐나는 시대라 더욱 슬픈, 인간으로서 너무 비참한 죽음입니다.

조휴정 KBS PD (KBS1라디오 '생방송 오늘, 이상호입니다'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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