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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홍우의 오늘의 경제소사]M-1 개런드 소총

‘고물.’ 50, 60대 중노년층의 이 총에 대한 인식은 바닥 수준이다. M1 Garand 소총. 무겁고 길어서 불편한데다 총구가 하도 닳아 명중률도 형편없다고 알려진 M1 소총에 대한 미국 내 평가는 정반대다. 당대에는 더욱 찬사를 받았다. 맥아더 장군은 효율적이고 신뢰성 뛰어난 소총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맥아더와 동시대 인물로 불같은 성정으로 유명했던 패튼 장군의 평가는 찬양가에 가깝다. ‘유사 이래 가장 뛰어난 전쟁무기.’

M1 소총의 성능은 예전 소총보다 훨씬 좋았다. 한 발 쏠 때마다 장전 손잡이를 당겨야 하는 이전의 볼트 액션식 단발 소총과 달리 클립(탄알집) 안의 8발을 반자동으로 연사할 수 있었다. 당연히 발사속도가 빨랐다. 똑같은 시간에 미군 보병 소총수는 독일군보다 1.8배, 일본군보다는 2.4배 많은 탄알을 퍼부었다. 병사들이 똑같은 각개전투 능력을 가졌다면 승부는 미군 병사의 몫으로 돌아갔다. M1 소총으로 무장한 덕분이다. 미국 육군은 ‘모든 병사가 반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최초의 군대’답게 연합국의 2차대전 승리를 이끌었다.

시대를 풍미한 명총 M1의 개발자는 존 개런드.(John C. Garand) 1888년 퀘백의 프랑스계 집안에서 태어나 미국에 이주한 11세부터 섬유공장과 공구공장에서 일하며 기계와 공구의 작동원리를 익혔다. 총기 제작자로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로드아일랜드 공구공장에서 일하던 1919년. 미군의 경기관총 현상공모에 입상하면서부터다. 1차 대전이 끝나는 통에 출품작은 실총 제작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개런드는 미 육군 조병창의 설계사로 특채돼 본격적으로 병기제작에 나섰다.

개런드가 미군을 위해 처음 내놓은 소총이 바로 M1. 1929년 미 육군의 차기 소총 테스트에서 승리해 1937년부터 선행양산에 들어간 M1 소총은 1940년부터는 본격적인 대량생산을 시작, 생산이 종료된 1957년까지 미국 내에서만 547만여정을 뽑았다. 2차 대전 종전과 함께 생산이 마감됐으나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생산 종료기간도 늦춰졌다. 이탈리아 베레타사 등 2차대전 후 면허생산분까지 합치면 M1 개런드의 생산량은 625만정에 이른다. 반자동인 M1 개런드 소총을 완전 자동소총으로 개량한 M14 소총의 생산량도 약 150만정.

모두 합치면 775만정에 이르는 소총을 개발한 개런드는 얼마나 벌었을까. 로열티 한 푼 받지 못했다. 1936년 1월 별다른 대가도 없이 M1 소총에 대한 권리를 모두 미국 정부에 양도했기 때문이다. 미국 의회가 그의 공로를 인정해 10만 달러의 특별보상금을 지급하는 결의안을 추진했으나 논의만 무성했던 말로 끝났다. 은퇴(1953년) 직전까지 육군 병기창 자문역을 하던 개런드는 그리 부유하지도 가난에 쪼들리지도 않았으나 1974년 2월 16일 쓸쓸하게 죽었다. 초도 양산으로부터는 79년, 생산 종료 시점으로는 59년, 개발자인 개런드 사망으로부터는 42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M1 소총을 사용하는 군대도 있다. 대한민국 해병대를 비롯해 몇몇 국가의 해병대나 대학 학군단에서 의장대 행사용으로 쓰인다.

개런드와 M1 소총의 얘기는 두 가지가 더 남았다. 첫째, 학교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개런드가 일급 기술자이자 설계자로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은 요즘도 가능할까. 다른 곳은 몰라도 한국에서는 불가능해 보인다. ‘흙수저론’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닌 것 같다. 두 번째, M1 소총과 한국의 각별한 관계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한국은 사용량이 많았던 국가다. 당연하다. 대규모 병력을 유지했었으니까.

보관량 역시 많다. 다른 국가들은 자동소총으로 전환하는데 한국은 1970년대 말까지 현역에서 마르고 닳도록 사용했기에 전시치장물자로 돌려놓은 물량이 적지 않다. 세계의 총기 동호인, 특히 미국인들이 바로 이 대목에 주목하고 있다. 총기 수집가들 사이에서 ‘희귀 아이템’으로 각광받는 M1 개런드 소총을 한국에서 수입해 미국에 판매하려는 움직임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의 인터넷 사이트를 검색해보니 온라인 경매에 나오는 희망 판매가격은 한 자루당 약 1,000~2,000달러 수준. 1,499~1,599달러 선이 가장 많았다. 상태가 좋은 M1 소총은 4,000달러를 호가한다. 일부 미국 언론이 한국을 두고 ‘옛날 미국 총’을 수출하면 ‘금광’을 캐는 격이라고 보도하는 것도 이런 가격대 때문이다. 77만정에 이르는 M1을 국내에 정당 85달러선에 들여왔으나 수출이 성사되면 수지맞는 장사임에 틀림없다.*

다만 전망은 밝지 않은 편이다. 수출이 가능한 국내 M1 개런드는 약 8만 6,000정.(카빈 소총도 그만한 물량이 있다) 군사원조로 들여온 물자가 아니라 한국이 낮은 가격이나마 돈을 주고 사들인 무기인데다 열심히 닦고 조이고 기름칠 해온 덕분에 보관 상태도 좋은 편이다. 그럼에도 수출은 기대난이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미국의 정책 변화. 한국의 대미 M1 수출에 대해 호의적이던 미국이 오바마 행정부의 총기 규제 강화 방침 이후 수입총기류에 대해서도 벽을 높였다. 둘째 이유는 국내 입찰 무산. 국방부는 지난해 3월 이들 총기를 수출하는 조건으로 경매에 붙였으나 모 국가유공단체와 K사 등 입찰자들이 가격을 너무 낮게 써넣어 2차례 연속 유찰되고 말았다.** 국방부는 일정량 이상을 진공으로 포장해 관리하는 등 계속 보관 유지할 방침이다. 유사시 전력으로 활용할 수도, 언젠가는 진짜 돈이 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한국과 M1의 인연, 참으로 오래간다. /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co.kr



* 한국과 미국은 M1 소총의 성격을 둘러싸고 이견이 많았다. 미국은 전량 무상 원조라고 주장하는 반면 우리 측은 수출물량으로 삼은 재고는 전량 ‘우호 가격’이나마 돈을 주매 유상 구매했다는 입장이다. 양국이 이견을 간신히 조정해 수출을 성사시킨 적이 두 번 있다. 최초 수출이 이뤄진 시기는 1986년부터 1989년까지. 20만정을 미국에 팔았다. 대금은 달러가 아니라 국산 K2 소총 4만 7,000정으로 받았다. 대미 수출을 맡은 S&T 모티브(당시 대우정밀)가 미국에 재고 소총을 넘기고 받은 대금에 상당하는 K2 소총을 군에 납품하는 구도였다.

복잡한 거래를 꾀한 데에는 국내 사정도 있었다. 소총 재고물량 판매대금을 국고에 환수해 재정에 넣어야 한다는 예산 당국과 군에서 활용해야 한다는 국방 당국이 대립한 끝에 이 같은 결제 방식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두 번째 매각 시기는 1991~1993년. 군은 11만정의 재고 M1을 미국에 넘기고 K2 소총 1만 7,000정을 받았다.

미국에 M1 소총을 팔면서 국내 업체는 한국어 낙서 등을 지우고자 열심히 닦았지만 정작 미국에서는 한국어가 적힌 M1이 총기애호가 사이에서는 오히려 더 환영받았다는 후문이다. 생산년도가 오래되고 전투 참가 흔적이 많을 수록 비싸고 총몸의 나무에 피가 배인 경우라면 더욱 비쌌다고.



** 연속 유찰에는 군 관련 단체의 터무니 없는 저가 입찰도 한 몫 했다. 수백억원을 예상했던 관계자들은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가격이 제시되자 규정에 따라 입찰 계획 자체를 접었는데 유공자단체 측의 거센 항의가 뒤따랐다. 수출 초창기에는 알토란같이 국내 전력 증강에 기여한 재고 M1 수출이 재개되더라도 이권 다툼으로 변질될 조짐도 보이는 3차 수출의 양상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관심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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